●크툴루를 전제로 한 소설입니다.

○고녹,녹고(죄송합니다, 어느 쪽인지 정하지 못했습니다…)전제의 이야기입니다.

크툴루를 모르는 분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본편에 들어가는 부분까지의 도입이 모르는 분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설명참고

   


설명은 첨부하지만 굳이 몰라도 상관 없어요! 도입부는 모여서 보드게임 한다고 생각하면 되실 듯 😊

크툴루 신화 : 기괴한 외계종족과 초월적 존재들에 대한 공포를 묘사한 신화. 러브크래프트의 호러 소설에서 나옴.
크툴루 TRPG : 크툴루 신화를 배경으로 한 롤 플레잉 게임. 시나리오 북과 주사위로 플레이함. 플레이어의 자유도가 높음.
키퍼 : 게임의 시나리오를 전부 알고 있으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게임 마스터.
플레이어(탐색자) :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
NPC : 플레이어 외에 스토리에 등장하는 캐릭터.
이성(Sanity, SAN치) : 본편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지만, 플레이어가 공포스러운 일을 겪었을 때 이 이성 수치(SAN치)를 측정 후, 특정 기준치 이상이 나올 경우 무사히 성공. 특정 기준치 이하일 경우 실패로 현기증,구토 등의 증상을 겪고, 행동에 제약이 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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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리조가 NPC, 선배 세 명이 탐색자입니다. 크툴루 슈토쿠 입니다.

 


원작 2002736,とまそん


 

 

 

라플라스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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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이한 주사위네. …하지만, 왠지 묘하게 익숙한 것 같은데…"

"초등학교 때 쓰던, 구슬이나 시계가 들어간 도구 세트에 있었지."

"그래, 산수 세트였나? 듣고 보니 있었네."


그리운 듯 웃는 오오츠보와 고개를 끄덕이는 키무라 옆에서, 미야지는 얼굴을 찌푸렸다.

 

"입학 전에 어머니가 그 조그만 주사위에 이름 쓰다가 나한테 짜증낸 추억밖에 없어…."

 

10면체 주사위의 이야기이다. 덧붙여 10면 주사위란, 말 그대로 면이 10개인 주사위다.

"너희 어머니 미인이시지."

"그런가? 엄청 성격이 급하다고? 그보다 어머니 얘기는 이제 됐어. 자, 시작한다." 

 

미야지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을 탁탁 두드렸다.

지금부터 오오츠보, 미야지, 키무라 세 사람은 미야지네 집 식탁에 둘러앉아 크툴루 TRPG를 실시한다.


계기는 단순한 것이었다. 미야지가 『아이돌에게 크툴루 TRPG를 시켜 보았다』라는 방송을 본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작년 여름에 TV에서 방영된 괴담 특집방송에 출연했던 미야지가 좋아하는 아이돌은, 겁이 많고 비명을 지를 때가 많아서인지, 혹은 작가도 그 아이돌을 좋아하는지, 아마 둘 다겠지만, 그녀가 주역으로 출연하고 있어 미야지에게 매우 흡족한 방송이었다. 그 흐름으로 다른 크툴루 리플레이 영상을 보며 크툴루 자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방송 제작자의 트위터를 팔로우 해 보니, 역시 제작자도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교류를 하던 도중, 도심에 거주하던 그와 얼마 전 콘서트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 때 크툴루를 시작하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빌리게 되었다. 오리지널인듯한 시나리오도 해 보라고 건네받았다. 좋은 사람이었다.
 

모처럼이고 재미있을 것 같아, 네가 좋아하는 마미링도 나온다고 오오오츠보에게 얼마 전 봤던 방송을 보여주고, 키무라도 끌어들여 게임을 하기로 한 것이, 지금에 다다르게 된 이유이다.


사실은 게임의 정리 역할인 '키퍼'를 확실히 정해야 하지만, 인원은 고작 셋이고, 이왕이면 미야지도 플레이어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미야지가 키퍼 겸 플레이어가 되어 받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천천히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즉, 미야지도 지금부터 할 게임이 어떤 이야기인 것인지,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다짜고짜 실전이다.


그렇지만 처음이고, 상대는 오오츠보와 키무라이니 큰 상관은 없을 것이다. 키무라도 처음엔 다 그런 거라며 수긍했고, 즐기는 것이 게임이라며 오오츠보도 웃었다.


세 명은 생각보다는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고등학생, 결국 남자. 중2스러운 요소에는 약하다. 게임도 싫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셋 다 얼마 전 진로가 정해졌다. 수험 공부가 끝난 것이다. 그것은 즉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다. 뭐든지 좋다.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 떠들고 싶다. 오오츠보조차 조금 들떠있었다.

 

슈토쿠 고등학교도 오늘과 내일은 입시 때문에 일반 학생은 입교 금지이며 동아리도 활동 정지다. 이왕이면 레귤러 전부가 모이고 싶어서 타카오와 미도리마에게도 권유했지만 두 사람 모두 이미 선약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 세이린의 1학년과 길거리 농구를 한다는 것 같다. 타카오는 크툴루를 알고 있었는지 시간이 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에, 밤까지 계속 놀 예정이라고 하자 저녁 무렵엔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 때쯤 올 것이다. 타카오가 온다면 미도리마가 오는 것은 확정이다.
 

그 때 다시 제대로 미야지가 키퍼, 나머지 네 명이 플레이어로 놀아도 좋을 것이다. 지금부터 셋이서 하는 게임은 말하자면 연습이다. 조금은 멋대로 해도 괜찮을 것이다. 타카오는 아니지만, 즐긴 자의 승리다.

 

"그러고 보니 시나리오는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려줄 수 있을까?"  


오오츠보의 질문을 받고, 미야지는 시나리오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아, 이거 도입부는 둘로 나뉘는 게 좋을 것 같은데…키무라나 오오츠보, 둘 중 한 명은 모르는 사이라는 설정도 괜찮아?"

"아아, 그럼 난 혼자라도 괜찮아."
 

키무라는 그렇게 말하고 손을 들었다.

그럼 호의를 받아들이자. 미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그러면 나와 오오츠보가 아는 사이인 설정이고, 키무라는 시나리오 진행 중에 알게 된다는 걸로."

"알았어."

"미안, 키무라."

"괜찮아."

 

미야지가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영국이 무대야. 런던인 것 같아." 

"엑, 내 캐릭터 일본 이름인데."

 

세 사람 다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도 있고, 캐릭터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이 왠지 모르게 쑥스러웠던 것이다. 키무라는 직업도 야채가게를 골랐다. 런던에 야채가게는 없을 것이다. 아니, 있기야 있겠지만.

 

"그렇게 치면 나도 일본 이름이야."

 

오오츠보도 진지하게 끄덕였다. 덧붙여서 오오츠보의 직업은 샐러리맨이다.

 

"나도 그래. 그러면 가상의 도쿄인 걸로 하자. 딱히 문제될 건 없겠지."

  

미야지는 고등학교의 체육 교사다.


"이야기 속에 빅 밴 같은 게 나오면 어떻게 할 거야?"

"도쿄에 시계탑이 있었나?"

"빅 밴은 국회의사당이잖아. 그럼 일본 국회의사당이라고 하자. 어떻게든 될 거야."

"그것도 그렇네."

"그러면 NPC 이름도 일본식으로 해야겠네. 미야지, 오오츠보, 키무라 안에 갑자기 존 같은 게 나와도 이상하잖아. 먼저 정해 둘까."


미야지는 시나리오에서 NPC의 이름을 찾았다.

데이비드·그린.

…그린.


"…데이비드·그린이라는 녀석이 나오는데, 이건 미도리마로 하면 되겠네. 그린이고."

"결정이다."

"그거 좋네."
 

그보다, 이제 셋 다 미도리마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린이고. 초록이고.

뉴 호라이즌인가.

중학교 영어 교과서 이야기이다.

 

"그러면 남은 NPC는 타카오로 할까. 으음…캐시…여자잖아." 

"타카오에게 네 이름 여자 캐릭터에 붙였다고 하면 '캐ww시www타카w오www' 라며 바닥을 구르면서 웃겠군."

"캐시 타카오라니, 개그맨 같잖아. 뭐 문제 없겠지. 그 밖에 눈에 띄는 NPC는 없는 것 같고. 그 녀석이라면 우리가 괜히 신경써서 안 쓰는 걸 더 싫어할 거야."

"그러네. 타카오라면 '선배 너무해요~'하고 웃어 넘길 거야."

"좋아. 시작하자."


 


 

 

 

 

세 사람 모두, 훗날 그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을, 이 때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라플라스의 악마】

 


오오츠보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온 것은, 이제 곧 날짜가 바뀌려고 할 때의 일이었다. 목욕과 식사를 끝마친 오오츠보는, 회사에서 들고 온 자료를 집중해서 읽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평상시 이런 시간에 걸려올 리 없는 착신음에 깜짝 놀랐다.


도대체 누가, 무슨 용무일까. 한밤중에 걸려 오는 전화에 좋은 추억은 없다. 아마 이 전화도 그다지 기쁜 소식은 아닐 것이다. 

전화를 받자 아니나 다를까, 미야지가 예상보다도 긴박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오오츠보?" 라며 자신의 이름을 불러 왔다.
 

"무슨 일이야? 미야지."

 

심상치 않은 모습에 오오츠보의 목소리도 무심코 낮아졌다.
 

"그게……확실한 정보인 건 아닌데…"

"그래. 무슨 일인데?"

 

오오츠보가 진정시키듯 맞장구를 치자, 미야지도 자신이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조금 호흡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린 후, 다시 말을 계속했다.

 

"아무래도…."

 

 

──────미도리마가 실종된 것 같아.

 

 

"뭐? 미도리마가?"


미도리마는, 오오츠보와 미야지의 고등학교 후배였다. 그 시절의 동아리 멤버들과 이따금 모여서 술을 마시던 터라, 친한 사람의 불온한 소식에 오오츠보는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거야?"

 

오오츠보가 묻자, 미야지는 그게, 라며 설명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미야지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정년 직전인 교사가 통풍에 걸려 좋은 병원을 찾고 있었다고 한다. 미야지는 신임 시절에 그 교사에게 크게 신세를 졌기 때문에, 의사인 미도리마에 아는 병원이 없는지 묻기 위해 연락을 했지만, 전화도 메일도 일절 답이 오지 않은 채 2주가 넘게 지나버렸다고 한다. 성실한 미도리마 치고는 드문 일이었지만, 의사이고 바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미야지는 걱정은 했지만 처음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미야지가 맡고 있는 동아리의 학생이 컨디션이 나쁜데 무리를 해서, 휴일 연습 도중 갑자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것은 마침 그런 때의 일이었다. 휴일엔 당연히 일반 병원은 열지 않고, 미야지는 곧바로 가장 가까운 큰 병원에 데리고 가기로 판단했다.

 

기다리는 동안, 문득 그 병원이 미도리마가 근무하는 병원이라는 것을 떠올린 미야지는,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근처를 지나가던 직원에게 미도리마에 관해 물어봤다고 한다. 그러자 직원은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미도리마 선생님, 벌써 3주 이상 병원에 출근하지 않았어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된 거야…"

"몰라. 물어본 직원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 것 같았어. 어쩐지 굉장히 안 좋은 예감이 들어서…이런 시간에 미안하지만, 너에게 전화한 거야. 저기, 나중에 잠깐 미도리마의 상태를 보러 가지 않을래?"


미야지의 말에 오오츠보는 곧바로 수긍했다. 오오츠보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나쁜 예감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겠어. 그렇게 하자. 최대한 빨리 가는 게 좋겠지…난 이번 주 일요일이 괜찮은데 너는 어때?"

"그래, 일요일이면 괜찮아. 그럼, 이번 주 일요일에 보자."

"알았어."
 

오오츠보의 대답을 듣고, 미야지는 이런 시간에 미안했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오오츠보도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쉬며 마지막에 만났을 때의 미도리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겨우 기운을 차린 것 같았는데….)


미도리마는, 몇 년 전 절친한 친구였던 타카오라는 남자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고 오랫동안 울적해져 있었다. 사고 당시의 미도리마는 거의 폐인 직전으로, 그의 주변 사람들은 미도리마가 타카오를 뒤쫓아 자살을 선택하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던 것이다. 오오츠보나 미야지에게 있어서도 타카오는 미도리마와 같이 절친한 후배로, 그들이 얼마나 사이가 좋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다.

 

하지만 삼 개월 전쯤 가진 술자리에서, 미도리마는 전에 비해 꽤 기운을 차린 듯 보였다.

아무래도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겨, 그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목표가 생긴 듯했다. 그렇게 말하는 미도리마의 표정은 기뻐 보여, 그런 미도리마의 얼굴을 본 것은 타카오가 죽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솔직히 오오츠보는, 미도리마의 그 모습을 보고 이젠 괜찮을 거라고 안심하고 있었다.

 

설마 실종이라니,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연락이 끊긴 지 3주가 지났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미야지와 이야기를 나눈 직원이 잘 몰랐던 것뿐이고, 알고 보면 별일 없는 상황이라면 좋겠지만, 얼마 전까지 우울에 빠져 있던 남자에 대해 낙관은 할 수 없었다.

 


 



 


 


 



 

***


키무라가 어머니의 숙모인 친척 아주머니에게 연락을 받은 것은 지난주 목요일의 일이었다.
 

친척이라고는 해도 그리 교류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키무라에 이르러서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분이었다. 어머니도 도쿄에 사는 아버지와 결혼한 뒤로 그 친척과는 완전히 연이 끊겨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연락에 매우 놀라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묻자 일순간 말하기 어려운 듯 말문이 막힌 친척은, 꼭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20년도 전에 집을 나간 채 연락이 없는 아들이, 도쿄에서 노숙자가 된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다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고 친척도 믿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만약 본인이었던 경우를 생각하면 잠자코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이야기에 확증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도쿄로 아들을 찾으러 간다고 가족에게 이야기하자, 사실인지 어떤지도 모른다며 제지당했다고 한다. 친척 아주머니 본인도, 그 노숙자 남성이 아들이라는 확고한 자신이 없는 이상 가족을 설득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에, 어떻게든 확인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도중, 친척인 어머니가 결혼해 도쿄로 상경한 일을 떠올린 것이다.

 

친척 아주머니의 부탁이라는 것은, 도내 모처에서 목격되었다고 한 아들에 대해서 가볍게라도 좋으니 조사해 봐주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어머니보다 연상인 그 친척 아주머니는 어머니가 어릴 적 매우 예뻐해 주었던 분이었고, 필사적인 모습에 키무라의 어머니는 거절할 수 없었던 듯했다.

사정을 들은 어머니는, 키무라에게 상태를 보러 가 주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했다. 20년 전 사진이지만, 아들의 사진도 받았다. 있다면 아마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한 키무라도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토요일. 키무라는 문제의 장소로 향했다.

벤치에 앉아 있는 노숙자에게 말을 걸자, 처음은 무서운 얼굴과 체격이 좋은 키무라에게 조금 겁을 먹은 것 같았지만, 사정을 알자 몇 사람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결과, 키무라는 친척 남성이 얼마 전까지 확실히 이 공원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그는 두세 달 전부터 이곳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자세한 정황을 묻자, 잘은 모른다는 전제와 함께, 친척은 한때 이 공원에 자주 오던 자원봉사자와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연줄로 일을 소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했거든. 아마 지금은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을 거야."

 

그 이야기를 듣고, 키무라는 친척 아주머니에게 예상 이상으로 좋은 소식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아 안심했다.
 

하지만, 아들이 확실히 도쿄에 있는 것을 알면 만나고 싶다고 간절히 원할 것은 확실하다. 모처럼이니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고 싶었던 키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 노숙자에게 그 자원봉사자에 대해 자세히 모르냐고 물었다.


"새하얀 피부에 안경을 쓴, 꽤 예쁘장한 얼굴의 남자였어. 아무튼 커다란 남자였네…당신도 꽤 크지만…당신보다 10센치는 더 컸던 것 같은데." 

"네?"

 

10센치?

 

"아니, 정말로 그랬어."


키무라는 솔직히 당황했다. 키무라는 187센치인 것이다. 자기보다 큰 사람과 자주 만날 일도 없었지만, 그것보다 10센치나 더 크다니.

즉, 그 자원봉사자는 2미터 가까운 키의 소유자라는 것이 된다.


연락처를 아냐고 묻자, 자신은 모른다며 고개를 갸웃한 남자는 마침 우연히 지나가던 다른 노숙자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냐며 이쪽으로 다가온 남자에게, 키무라는 다시 사정을 설명했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나도 미도리마와는 꽤 사이가 좋았던 시기도 있었다고 중얼거렸다.


"미도리마?" 

"그 자원봉사자의 이름이야."

"미도리마…. 특이한 성씨네요."

"그렇지. 확실히, 미도리마 신타로라고 했던가."

"음…한자는 녹색의 초록(緑)에, 사이 간(間)자, 참 진(真)자에 타로(太郎)인가요?"

"아마도 그럴거야. 참 진(真)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한자는 확실해."

 "그런가요."


고개를 끄덕이며, 키무라는 문득 생각했다. 이 남자가 그 미도리마란 사람과 사이가 좋았다면, 키무라의 친척처럼 일을 소개받지 않았던 것일까? 친척을 찾는 단서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다음, 남자에게 당신은 미도리마에게서 일을 소개받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제안은 받긴 했는데…. 실은 네 친척도 포함한 여럿이 그 제안을 받았고, 수락한 사람은 꽤 있었어. …열 명 정도려나."

"열 명?"


키무라가 반응하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안을 받은 건 여기 녀석들만이 아니었던 것 같아. 여기저기에서 두, 세 명씩. 친해져서 일을 소개해 준다고 들었어."


여기저기라니, 키무라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소개하는 일에 적합한 성격인 사람을 고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솔직히 이상한 이야기다…)

일말의 불안을 느꼈지만, 키무라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가요."


키무라가 끄덕이자, 남성은 그런데, 하고 목소리를 낮춰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속삭였다.


"그 미도리마라는 남자, 난 어쩐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어. 나쁜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하지만…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내 직감이야. 그러니까 난 그 제안을 거절한 거야."

"하지만 너, 그 직감을 믿고 실패해서 지금 이 꼴이잖아."

 

옆 노숙자에게 놀림을 받은 그는 "시끄러워."라며 눈썹을 치켜올린 후 쓴웃음을 지었다.


"…뭐, 내 직감이래봤자 이런 거야. 네 친척은 잘 지내고 있을 거야."

"그러면 기쁘겠지만요…."

 


그 후 잠시 잡담을 하고, 키무라는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공원을 떠났다. 

 

(자, 그럼.)


친척이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알았다. 현재는 직업을 구해 건강하게 일하고 있을 거라는 것도, 그 일을 소개해준 남자의 이름도 알았다. 흔치 않은 이름이고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 인터넷에서 조사하면 소속 단체명과 함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목이 말랐던 키무라는, 공원에서 나와 그대로 근처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마시면서 휴대폰을 열었다. 미도리마 신타로라고 검색을 하자, 도내 대형병원 의사의 이름이 나왔다.
 

(동명이인인가?)

일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미도리마다.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흔치 않을 것이다.

의사라면,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하는 틈틈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도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병원에 가면 그 미도리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키무라는 곧 그 병원에 가기로 했다.


병원에 도착한 키무라는, 즉시 복도를 걷는 간호사나 직원 몇 명을 붙잡고 미도리마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모두 미묘한 얼굴을 하고 애매하게 말을 얼버무리며 떠나 갔다. 

어떻게든 한 명을 잡고, 사정을 이야기한 다음 만나게 해 줄 수 없을까 묻자, 미도리마라는 의사는 사정이 있어 최근 3주 정도 병원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요?"

"저도 그냥 직원이라 잘 모르겠네요…."

"연락처를 알려 주실 순 없을까요?"

"아뇨, 저도 친하지도 않고…프라이버시니까요…."

 

그야 그렇다.

 

"그럼 미도리마 씨에게 이야기를 전해주실 만한 분을 소개해 주실 수 없을까요?"

 

키무라가 계속 물고 늘어지자, 병원 직원은 동정해 준 것인지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그게 미도리마 선생님, 병원 내에서 특별히 친하게 지내시는 분은 안 계실 거에요. 일과 사생활은 확실하게 나누고 계신 분이라." 

"…그런가요…."

"아, 하지만…."

 

직원은 "그러고 보니."라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동료에게서 들은 얘긴데, 얼마 전 미도리마 선생님의 친구가 병원에 왔었다네요. 느낌상 교직원 같았다고 해요. 같이 온 학생이 슈토쿠 고등학교라고 쓰인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고 하던데, 슈토쿠 고등학교에 연락을 해 보면 어떨까요."


그 이야기를 들은 키무라는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슈토쿠 고등학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사무원이 받았지만,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하자 직원실에 연결해 주었다. 전화를 받은 교사에게 얼마 전 모 병원에 학생을 데려간 선생님을 찾고 있다고 하자, 잠시 전화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 뒤 미야지라는 교사로 연결되었다. 아무래도 그가 미도리마와 직접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사정을 설명하고, 미도리마에게 연락을 해 줄 수 없겠냐고 부탁하자, 그 교사는 "실은 미도리마와 3주 정도 전부터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방금 전 직원도 비슷한 얘기를 했지만, 전화 상대는 꽤 진지한 목소리로 그 사실을 전했다. 혹시 키무라의 생각보다도 미도리마 선생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미도리마 씨, 무슨 일 있었나요?"

"실은 그것조차 몰라서요. …그것 때문에 내일 제가 집으로 찾아가려고 하는데…괜찮으시다면 키무라씨도 함께 가시겠어요? 저도 자세하게 이야기를 듣고 싶던 차라서요."


미도리마의 집에 갈 수 있다면, 키무라도 더할 나위가 없었다. 어쩌면, 친척이 일하고 있는 곳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겠습니다.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자, 미야지는 약속 장소를 지정했다.


"아마 인파에서 머리 두 개쯤 삐져나온 사람이 둘 있을 거에요. 한 명은 저고, 갈색 머리로, 나머지 한 명은 스포츠 머리를 한 남자니까, 말을 걸어주세요. 연락처는…."


키무라는 전화 너머로 미야지와 연락처를 교환한 후, 통화를 종료했다.

예상외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어머니의 친척과 그 아들이 만나는 날은 가까울지도 모른다.

 

 


 


 


 


 


 

 

 

 

 


 

 

***


일요일,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키무라와의 약속 전에 미도리마의 친가를 방문했다. 미도리마의 집에 간다고 해도, 아마 문이 잠겨있을 것이라고 오오츠보가 예상했기 때문이다.


초췌한 모습으로 문을 연 미도리마의 어머니는, 아들의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 선배인 오오츠보와 미야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눈을 크게 떴다. 오오츠보는 갑작스러운 방문을 사과한 후, 미도리마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것과 미야지가 병원에서 들은 실종 소문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전했다. 

 

미도리마의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실을 확인한 오오츠보와 미야지가, 실은 지금부터 미도리마가 살고 있던 집에 가 보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어떻게 해서든 미도리마를 찾고 싶다는 말을 꺼내자, 미도리마의 어머니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무래도 성인 남성이기 때문에 미도리마의 실종에 대해 경찰이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은 것 같다. 남편과 함께 미도리마의 집에 가 보았지만 뭐가 단서인지도 알 수 없었다고, 우리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사고방식이 유연해서 경찰보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미도리마의 집 열쇠를 건네주었다.


두 개가 있다.

두 개?

 

오오츠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자, 미도리마의 어머니는 지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는 맨션에 살고 있었지만, 얼마 전에 이사했어."

"네."

 

그 일에 대해서는 오오츠보와 미야지도, 미도리마 본인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이상한 이사였다. 독신인 미도리마는, 어째서인지 단독주택을 매입해 이사했던 것이다.

오오츠보가 애매하게 끄덕이자, 미도리마의 어머니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단독주택이라니 이상하잖아. 말렸지만 듣지도 않고…. 이제 어른이니까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뒀는데…어째서인지 맨션을 팔지 않았었던 것 같아. 어느 쪽에 단서가 있을지 모르니까, 둘 다 주는 거야."

 

부탁이야.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때의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그녀에게 있어 바야흐로 지푸라기였을 것이다.


오오츠보나 미야지도 딱히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없고, 믿어준 것은 감사하지만, 타인인 두 사람에게 아들의 집 열쇠를 시원스럽게 건네준 미도리마의 어머니가 얼마나 판단력을 잃었는지 알 수 있어,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완전히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듯했다. 확실히 미도리마는 외동아들이었다. 성인이라고는 해도 자식은 자식. 걱정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미도리마의 친가를 떠났다.



 


 

그 후, 두 사람은 역에서 키무라와 합류해 미도리마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가는 도중, 세 사람은 자기소개를 하며 긴장을 푸는 목적도 겸해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이야기하던 도중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 사람은 동갑이었다. 미야지도 오오츠보도 키무라와는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마음이 맞을 것 같아,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두 명은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미야지도 오오츠보도, 미도리마의 실종의 건에 대해 원인을 숙고하고 있었다. 

미도리마는 오랫동안 우울에 잠겨있었다. 스스로 사라졌을 가능성도 크지만, 만약 자신의 의지로 사라진 게 아니라면 아마도 미도리마가 간 듯 한 '자원봉사'에 원인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즉, 키무라의 친척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저, 키무라씨."

"아아, 말씀 편하게 하셔도 괜찮아요. 이름도, 편하게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그…키무라의 친척이 공원에서 자취를 감춘 게 언제쯤인지 물어봐도 괜찮을까?"

 

오오츠보가 묻자, 키무라는 가볍게 고개를 갸웃했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두세 달 전쯤인것 같아."

"…그렇군. …미야지, 미도리마가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건…."

"세 달 전이었던 것 같아."

"그렇구나…."

  

키무라의 이야기를 듣는 한, 미도리마가 자원봉사자로 자칭해 키무라의 친척과 만나게 된 것은 그가 맨션을 떠나 단독주택을 매입했던 시기와 겹친다.

뭔가 관계가 있을까?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여기에서 장소가 가깝기도 해서, 우선 세 사람은 미도리마가 전에 살고 있던 맨션에 향하기로 했다.

도중, 문득 키무라가 입을 열었다.


"미도리마씨는 왜 전에 살던 맨션을 팔지 않은 거야?"

 

당연한 의문일 것이다. 키무라의 물음에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일순간 침묵했다.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었다.

미도리마와 죽은 타카오는, 그 맨션에서 룸 쉐어를 하고 있었다. 아마, 추억이 너무 많아 살 수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퇴거하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채로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오오츠보나 미야지도, 맨션에는 아마 대부분의 물건이 타카오가 살아 있었을 무렵과 똑같이 놓여져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현관문을 열자, 사람이 살지 않는 집 특유의 정지된 분위기지만, 예전과 변함없는 모습이 세 명을 맞이했다. 책상과 의자, 집 전화까지 전부 갖추어진 모습에, "원래 있던 옵션은 아니지?"라며 키무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물음에 애매하게 수긍한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타카오가 죽고 난 뒤와, 이상할 정도로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타카오가 죽은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전부 그대로다. 미도리마가 유품을 정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식기는 두 개씩. 슬리퍼도 두 켤레. 미도리마는 요리를 하지 않지만, 요리 도구 또한 버리지 않고 남아 있었다. 다른 점이라고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는 것 정도였다.
 

두 사람 모두 몇 번인가 이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타카오까지 넷이서 술을 마시거나 전골을 먹었던 적도 있었다. 지금도 타카오가 실실 웃으면서 부엌에서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억에 짓눌려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세 명은 뭔가 단서가 없는지 여기저기 둘러보기로 했다. 오오츠보는 미도리마의 방에 들어가, 데스크의 서랍을 닥치는 대로 뒤지고 있었다. 미도리마는 일기를 쓰고 있을 법한 타입이니,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역시 새 집에 가져갔을까.
 

아무 성과도 못 얻은 것에 안타까워하며 오오츠보가 책상의 서랍을 닫았을 때, 클로젯을 보고 있던 키무라가 "응?"하고 느닷없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뭔가 찾았을까 달려가 보니, 그곳에는 흰 통 모양 상자가 놓여있었다. 습기 찬 장소에 두었었는지, 이상하게 더러워져 있었다.


이런 상자를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뭐였을까. 오오츠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미야지가 주방에 놓여있던 노트북의 패스워드는 풀지 못했다고 말하며 오오츠보와 키무라가 있던 방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이 클로젯 앞에 굳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미야지가 다가와 들여다 보고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

 

그 말에 키무라가 반응했다.

 

"역시 그거지?"


오오츠보는 무슨 뜻인지 몰라, "뭐야 이건."하고 물었다.

이마를 깊게 찡그린 미야지가 오오츠보의 물음에 조용히 대답했다.

 

 "…유골함이야."

 

유골함. 어째서 그런 게 클로젯 안에? 오오츠보는 흠칫흠칫 유골함을 들고, 뚜껑을 열었다.

 

안은 텅 비어있었다. 마치 씻은 듯 깨끗했다. 하지만, 유골함의 외관은 마치 한동안 습기 찬 곳에 놓여 있었던 것 같았다. 아마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종류의 얼룩으로 보아, 이 용기가 '한 번 사용되었던' 것은 확실했다.

 

"도대체 누구의……."


중얼거리는 키무라의 옆에서, 오오츠보는 숨을 삼켰다.


"…미야지." 

"…응."

"아마, 이건…."

"…타카오겠지. 이거."

 

미야지가 오오츠보의 의도를 읽고 수긍했다.

타카오.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한 것은 키무라였다.

 

"누구야? 타카오는."

 

오오츠보가 그 질문에 대답했다.

 

"…그, 미도리마의 친구였던 녀석이다."

"였던?"

"…벌써 2년쯤 됐을까? 사고로 죽었어."

 

키무라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어…왜 그 타카오 씨의 유골함이 여기에?"

"…전혀, 모르겠어…."

 

거짓말이었다. 미야지는 대충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 오오츠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 미도리마는, 이 유골함을 타카오의 무덤에서 훔쳐온 것이다.

계속되는 침묵에, 키무라도 그 사실을 예상한 것 같다.

  

"유골이…없는데…."


키무라의 중얼거림에, 무심코 미야지는 신음했다. 유골이 없다. 미도리마도 없다. 즉, 미도리마가 가져갔을 것이다.


어디로?

아마, 미도리마와 함께 그가 사라져버린 곳으로.

미야지의 머릿속에, 최악의 상상이 뚜렷한 형태가 되어 스쳐지나갔다. 어쩌면 미도리마는, 스스로의 의사로 타카오의 유골과 함께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그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서.

 

어쩌면 미도리마는, 타카오가 죽고 나서부터, 계속 그의 뒤를 따라갈 시기를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몇 년 전 타카오가 죽은 직후, 모두 미도리마의 초췌한 모습에, 내버려 뒀다간 죽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혼자 둘 수 없어서 2주 정도 번갈아 미도리마의 곁에 누군가 있도록 했었지만, 그런데도 미도리마는 한 번 자살을 시도했다.

그 날, 미도리마 집에 갈 예정이었던 아오미네라는 남자에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그는 소꿉친구이자 미도리마와도 사이가 좋다는 모모이라는 여성에게 대신 가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모모이가 오자 미도리마는, "미안하지만 지금부터 목욕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라고 말한 후 욕실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손목을 그은 것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목욕을 오래 하는 사람이 많다. 여자인 모모이라면 목욕 시간이 길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또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도 상대가 여성이라면 좀처럼 남성이 들어가 있는 욕실 문은 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행동이었던 것 같지만, 우연히 아오미네가 모모이에게 대신 가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들은 아카시가 눈치채, 무사히 끝난 것이다.

그 날 미도리마의 집에 방문할 예정이 없어 사정을 알지 못했던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 후 미도리마는 체념한 듯 타카오의 뒤를 쫓으려는 듯한 행동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한동안은 회복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최근에야 겨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해, 모두 안심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주위의 눈을 자신에게서 돌리기 위한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죽을 생각이었다면.

타카오의 유골과 함께.

상상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키무라의 친척에게 일을 소개한 자원봉사의 건은, 마지막에 뭔가 좋은 일이라도 해 두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타입은 아니었지만,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의 심정 같은 건 오오츠보도 미야지도 알지 못했다.


"젠장, 어디로 사라진 거야 미도리마!! 정말 그 자식 패 버리고 말 거야!!"


갑자기 격렬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 미야지는 클로젯의 문을 세게 쳤다. 화가 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자취를 감춘 지 벌써 3주째다. 만약 상상이 맞다면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좀 더 빨리 움직였다면.

 

"진정해 미야지. 일단 다른 단서가 없는지 찾아보자. 그리고 이게 정말로 타카오의 유골이 들어가 있던 유골함이라면, 유골이 타카오의 무덤에서 사라졌는지 확인한 후, 타카오의 부모님에게도 알려드려야 하겠지. 유골이다. 미도리마의 잘못을 드러내는 건 좀 꺼려지지만…역시 모른 척할 수는 없어. ……………미도리마는, 역시 이걸 무덤에서 훔쳐온 걸까? 그런 걸 간단히 할 수 있을까?"

"무덤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간단하게 훔쳐 올 수 있던 거 아냐? 온종일 감시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낮에는 역시 누군가에게 들킬 테니, 미도리마 녀석 한밤중에 무덤에 가서 납골실 뚜껑을 열고 꺼내 왔겠지. 천벌 받을 짓이나 하고…아―생각만 해도 무서워…."


미야지는 자포자기한 듯 중얼거리며, 낮은 신음과 함께 머리를 쥐어뜯었다. 오오츠보와 키무라는 비교적 침착했지만 돌을 삼킨 듯한 기분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세 사람 사이에 침묵이 떨어졌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오오츠보였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상황만 보면 솔직히 미도리마의 생사는 뭐라 단정 지을 수 없지만…그래도 서두르는 편이 좋은 건 확실해. 살아 있다면 물론 큰일이 나기 전에 빨리 찾아내 안심하고 싶지만…죽었다고 해도, 빨리 찾아 주고 싶어."

 

겨우 침착해진 모습의 미야지가 끄덕였다.

 

"…그래…."

"목표는 정해졌으니 남은 건 어떻게 행동할지다. 이건 내 제안인데, 지금부터 단독주택에 가는 것도 좋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미도리마가 일하는 병원에 행선지의 단서가 남아 있지 않을까?"

 

오오츠보의 말에 키무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미도리마 씨는 일과 사생활을 구분하는 타입이라고 병원 직원에게 들었어. 친하게 지낸 사람은 없다고. 그래서 일부러 슈토쿠 고등학교에 연락한 건데."

"…미도리마니까 아마 진짜겠지…."

"아니, 하지만 병원에도 미도리마의 물건 같은 게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미도리마는 독신에 집도 병원 근처라 휴일에도 자주 호출을 받는다고 전에 말한 적 있었지."

"그러고 보면 그랬었지…."

"그렇지? 병원에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것보다 길었을 거야."

"하지만, 우편물 같은 건 역시 집일 거야."

 

키무라의 말에 미야지는 신음했다.

 

"그보다, 키무라의 친척의 단서도 찾아야지. 미안해."

"아니, 내 친척은 미도리마 씨처럼 생사가 걸린 절박한 상황이 아니니까. 미도리마 씨는 친척의 은인이기도 한 것 같고, 괜찮다면 나도 돕게 해 줘."

 

키무라의 말에,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감사를 전했다.

 

"말려들게 해서 미안해. 도움을 받아도 괜찮을까?"

"그래. 나도 건강한 미도리마 씨에게 친척이 있는 곳을 듣고 싶어."

"고마워. …그러면 둘로 나누어질까. 병원과 집으로."

 

오오츠보의 제안을, 미야지가 가로막았다.

 

"아니, 셋으로 나뉘는 게 좋지 않을까? 한 명은 타카오의 가족을 만나서 무덤을 확인하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미도리마가 타카오의 유골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면, 실종 전에 타카오의 친가에 가지 않았겠어?"

"아―…. 그 녀석이라면 확실히 그랬을 것 같긴 하네. 속죄나 죄악감 같은 게 아니라, 데려간다는 인사로. …그럼 내가 타카오의 무덤과 친가. 병원은 미도리마와 직접 아는 사이이고, 공무원인 미야지가 적임일 거야. 신분도 확실하고. …미안하지만 키무라에게 집 쪽을 부탁해도 될까?"

 

오오츠보의 말에 키무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는 건 죄책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네. 일단 대충 조사해 둘게."

"아, 내 쪽은 아마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을 테고, 끝나면 도와줄게."

"나도 끝나면 너희 쪽에 합류할게."

"응, 그럼 일단 미도리마의 집에서 모이는 게 되겠네."

 


그 후 가볍게 둘러봤지만 눈에 띄는 것을 찾지 못 한 세 사람은, 맨션을 나온 후 세 조로 나뉘었다.

 


 


 


 

 

 


 

 

 

 


 

 

 

***


처음엔 타카오의 무덤에 가 유골함의 유무를 확인한 후 타카오의 집에 향하려 했던 오오츠보였지만, 도중에 무덤에 가도 자신은 타카오의 유골이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우선 타카오의 친가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나온 것은 타카오의 여동생이었다. 문을 열자 벽 같은 남자가 있어 순간 흠칫한 것 같았지만, 얼굴을 보고 오오츠보인 것을 깨닫고는 오랜만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근처에 들른 김에 선향을 올리고 싶어 왔다고 말하고, 오오츠보는 타카오의 부모님이 계신지 물었다.
 

함께 여행을 갔다는 답을 듣고, 오오츠보는 갑자기 말이 막혀버렸다. 언제 돌아오는지 묻자, 그녀는 사흘 후라고 답했다.

 

"…그런가요."

 

운이 나쁘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오빠의 선배가 부모님에 대해 묻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타카오의 여동생은 무언가 눈치챘는지 "무슨 일 있나요?"라고 솔직하게 질문을 던졌다.

말을 할지 고민한 끝에, 어쩌면 부모님에게 연락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오오츠보는 여동생에게 타카오의 유골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설마, 미도리마 씨가…? 오빠의 유골을?"

"아니,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솔직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카오의 여동생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지금부터 묘에 확인하러 가요."

 

의지가 강해 보이는 눈이다. 그 눈이 타카오와 꼭 닮아, 오오츠보는 왠지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마음은 고맙다. 하지만 동시에 미안했다.

타카오와 나이 차가 나는 여동생은, 계산하면 올해 대학생이 된 지 얼마 안 된 나이일 것이다. 부모님이 부재중일 때, 아직 어린 딸을 데리고 인적이 드문 무덤에 가는 것은 어떨지에 대해 오오츠보는 생각했다.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라고 얼버무린 후 거절하자, 말씀하시고 싶은 건 알겠지만 오빠의 유골이에요, 라는 대답에 오오츠보는 침묵했다.

 

"저, 납골 때도 확실히 보고 있었으니까요. 오빠의 유골이 없어졌다면 알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오오츠보는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분명히 무덤에는 타카오의 다른 친척들의 유골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미도리마는, 어떻게 납골실에서 타카오의 유골을 알 수 있었을까?

오오츠보가 그렇게 묻자, 타카오의 여동생은 눈썹을 숙였다.


"미도리마 씨, 몸이 안 좋아서 오빠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으니까요…납골 때 불렀거든요. 그러니까 어디에 두었는지 알 거에요. 오빠가 죽은 뒤, 아무도 집안에서 죽은 사람이 없으니까 장소도 그대로일 테고…."

"…."


솔직히 오오츠보의 안에서 미도리마의 상황은 어두웠다.

결국 오오츠보는 빨리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도 있어, 그녀와 함께 타카오의 무덤에 향하기로 했다.

 

무덤으로 향하는 도중, 오오츠보는 미도리마가 행방불명된 사실을 알리고, 최근 만난 적이 없냐고 물었다. 타카오의 여동생은 미도리마의 실종 소식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한 달 전쯤에 타카오의 집에 방문했다고 한다.


한 달 전. 미도리마가 실종된 것이 삼 주 전이니까 일주일 전이라면 실종 바로 직전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묻자, 타카오의 여동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실종과는 별로 상관없을 것 같지만요…. 으음…, 아버지와 어머니의 건강 상담을 해 주셨어요. 그게, 목적은 오빠에게 선향을 올리러 와 준 거였는데, 그 후에 어쩌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아버지나 어머니도 슬슬 건강이 신경쓰이기 시작하는 연세니까요. 아들의 친구이자 의사이고 아버지나 어머니도 창피할 만큼 신이 나셔서…미도리마 씨도 바쁘실 텐데 질문에 이것저것 대답해 주셨어요. 게다가 저렴한 가격에 건강검진까지 소개해 주시고. 아버지나 어머니도 호의를 받아들여 미도리마 씨가 일하는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갔었어요."

"…그런가요."

 

아아, 정말로 관계없었다. 오오츠보는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타카오의 여동생도 미안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미도리마 씨가 마지막에 오셨을 때 별로 평상시와 다른 것 같진 않던데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건강에도 신경써주시고…솔직히 믿을 수 없네요. 실종되었다니."


어두운 표정을 한 여동생에게, 오오츠보는 어딘가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린 나이에 오빠가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깊을 텐데, 게다가 유골이 도둑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안 좋은 소식을 가져온 것은 오오츠보이고, 그 범인으로 추정되는 미도리마가 실종됐다고 전한 것도 오오츠보였다.
 

그런데도, 부디 미도리마를 원망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것은 선배 마음이라는 걸까. 미도리마는 아마, 어떻게든 타카오와 함께 가고 싶었을 것이다.

타카오의 여동생은 한순간의 침묵 후, 말을 계속했다.

 

"오빠의 유골은, 처음 들었을 때는 놀랐지만…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솔직히 당황스러울 뿐 화가 나지는 않아요. 아버지와, 특히 어머니는 납득이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오빠는 오히려 행복하지 않을까…그렇게 생각해요. 오빠는 정말로 미도리마 씨를 좋아했으니까요…. 나쁜 생각이죠?"

"아뇨…."

 

오오츠보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길고 긴 침묵이 떨어졌다. 전철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기대, 둘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목적지 근처 역에 도착한 후 버스로 갈아 탄 후, 이윽고 무덤에 도착했다.

묘지는 낮에도 고요했다.

 

타카오의 여동생이 무덤 납골실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다. 오오츠보에게는, 그녀의 몸에 가려져 무덤 납골실 내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순간 침묵이 떨어졌다.


"…없네요."


그 후 타카오의 여동생이 툭 떨어트리듯 내뱉은 말에, 오오츠보는 다만 "그런가요."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미도리마가 매입했다는 단독주택은, 주택가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차 한 대, 혹은 두 대가 빠듯이 지나갈 정도로 가느다란 도로가 그물처럼 얽힌 주택가는 솔직히 길을 찾기 어려워, 키무라는 예상보다 도착하는 데 긴 시간을 소요했다.


열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현관 앞에 창이 없어 낮인데도 갑자기 어슴푸레해졌다. 사람이 한 달 동안이나 들어가지 않아서 공기의 흐름이 멈추어 있던 탓인지, 가라앉은 공기에 키무라는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주인이 실종된 걸 알고 있어서인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그다지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생각했다.


키무라는 우선 우편함을 들여다보았다. 비행기 티켓에 관한 것 등 행선지를 파악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없었지만, 가스와 수도 요금 명세표가 들어가 있었다.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미도리마가 자신의 의지로 자취를 감췄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 했지만, 키무라는 그것에 의문을 가졌다.

자신의 의사로 실종된 인간이 수도도 가스도 전기도 끊지 않는다니, 그런 일이 있을까?

 

(역시 미도리마 씨는, 뭔가에 휘말린 게 아닐까?)

 

키무라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한 달 분의 먼지가 살짝 바닥에 쌓여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문을 열자, 뭔가 정체 모를 것이 나올 것 같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들었지만, 열어 보니 화장실이었다.

귀신인 줄 알았더니 마른 참억새였다는 속담이 있다. 김이 빠진 키무라는 혼자 웃었다.

 

다음 연 문은 창고였다. 뭔가 눈에 띄는 것은 없는지 두리번거렸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물건만 놓여져 있어 잘 알 수 없는 방이었다. 통일감이 없다. 왜 너구리 도자기가 있는 걸까. 그 외에는 오뚝이나 커다란 다루마, 바보처럼 커다란 테디 베어, 솔직히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만이 늘어서 있었다.

집주인의 취미가 의심스럽다. 지금까지 들었던 미도리마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장신에 예쁘장한 인텔리 안경일 터이다. 인상이 바뀐다.


문득 키무라는, 그런 잡동사니 아래, 매트가 깔린 바닥에 크고 붉은 얼룩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늬는 아닌 것 같다.

 

(뭐야 이건.)


뭔가 어지간히 크게 흘리지 않으면 이렇게는 안 될 것이다. 마치 살인 현장 같다.

 

(…와인?)


미도리마는 의사였다고 하니, 돈 드는 취미가 한두 개쯤은 있을 것이다. 저쪽에 놓인 너구리나 봉제인형, 훌라후프보다 훨씬 어울린다. 그 밖에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키무라는 그 방을 뒤로했다.


다음 방은 거실 겸 식당이었다. 아마 1층에서 제일 넓은 방인 것 같았다. 생활감이 없는 것은, 놓인 물건이 너무나도 적고 심플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도리마는, 평소 거실과 자기 방 중 어디에서 시간을 주로 보냈을까.)


그에 따라 조사할 장소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키무라는, 자기 방은 있지만 거실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학생 시절엔 꽤 클 때까지 숙제도 거실에서 했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모처럼 공부 책상을 사줬는데' 라는 핀잔을 들었었다.

 

(뭐, 1층부터 차례로 조사해 볼까.)


그렇다고는 해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찬장을 들여다보자, 두 명 분의 식기가 있었다.


(두 명 분…?)


독신생활이었다면 어째서 한 명 분이 아닐까?

노숙인 분들에게 일을 소개해 주고 있었던 시기와 이 집을 샀던 시기가 겹치니까, 어쩌면 이 식기는 키무라의 친척 등을 대접하기 위해 샀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반대로 이 식기 수로는 부족할 것이다.

 

(누군가와 살 생각이었을까?)


누구와? 여성일까?


(그보다, 누군가와 살 생각이었다면 스스로 실종되지는 않았겠지….)

 

역시 그는 무언가에 휘말린 게 아닐까.

그 후 키무라는 부엌도 살펴보았지만 깨끗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있는 것은 라면이나 인스턴트 카레 등이었다. 독신 남성의 평소 식사는 대체로 이런 것일 것이다. 거실 겸 식당을 대충 둘러본 키무라는, 그 후 일본식 방에 들어갔지만, 그곳에도 특별히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복도 가장 안쪽 방을 열려고 했을 때, 키무라는 갑자기 격렬한 오한에 습격당했다. 무심코 손을 멈췄다. 피부 아래에서 거품이 이는 듯한 감각이었다.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불쾌감도 있었다.


(…들어가고 싶지 않아….)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진 키무라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미야지였다. 가능하면 혼자 이 집에 있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 키무라는, 일단 집 밖에 나와 휴대폰의 호출음에 응했다.

 

 


 


 


 


 


 


 


 


 

 


 

***


병원으로 향했던 미야지가 미도리마의 친구임을 밝히고 소지품을 조사하고 싶다고 하자, 처음에는 역시 난색을 표했다. 어쩔 수 없이 신분을 제시한 다음, 미도리마의 친가에 연락을 넣어 전화 너머였지만 미도리마의 어머니에게도 부탁을 받았다.
 

응대해준 직원은 혼자 판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잠시 기다려 달라고 방치되고 15분 후. "원장님의 허가가 나왔습니다."라는 말에 미야지는 깜짝 놀랐다. 이 빌어먹게 커다란 병원의 원장에게까지 이야기한 건가.

 

"다만, 환자분들의 자료 같은 것도 있어서…일단 병원 관계자 감독 하에 하시는 걸로 괜찮습니까?"

"아, 네 물론이죠."

 

미야지가 끄덕이자, 미도리마가 쓰고 있었던 듯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감독으로 온 남자는 미야지보다 조금 연하, 아마 미도리마와 동년대로 보이는 임상병리사였다. 인사를 하자 남자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단 미도리마 씨와는, 병원 내에서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 성실한 사람이 갑자기 삼 주간이나 연락두절이라니 믿을 수 없어요…. 저도 돕게 해 주세요."

 

밝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남자를 보며, 미야지는 그 녀석 좋은 동료를 가졌잖아, 하고 멍하니 생각했다.

미야지는 미도리마의 책상 서랍을 열고, 꽂혀있던 자료를 살펴보았다. 한동안은 둘 다 말이 없었지만, 미야지는 일단 남자에게 미도리마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없는지 묻기로 했다.

 

그러자 남자는 일순간 침묵한 후, 불쑥 말했다.

 

"실은 미도리마 씨, 실종 전 모습이 이상했어요."

 

이제 와서 실마리가 생긴 걸까?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미야지는 무심코 손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미야지는 크다. 190이다. 일순간 위축된 듯한 임상병리사는 눈을 크게 떴지만, 곧바로 원래 표정으로 돌아와 끄덕였다.


"그게, 저, 미도리마 씨가 실종되기 전에 자신이 입양아라고 말했어요."

"…네?"

"양부모에게는 감사하고 있지만, 계속 친부모를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겨우 부모님으로 추측되는 사람을 찾았다고, 실종 일주일 전쯤에 말했습니다. 그런데 찾은 건 좋지만 친부모라는 확증이 없어서, 친자확인검사를 하고 싶다고 저한테 상담한 겁니다. 그가 말하길, 친부모라고 생각되는 분에게 아들이라는 걸 숨기고 의사로서 접근해, 이 병원에 건강검사를 받으러 오도록 권유했다고 합니다. 저렴한 편이라고 거짓말까지 해서요. 실제 비용의 8할 이상은 미도리마 씨가 지불해서, 저렴하게 보이도록 했다고 합니다. 제가 ‘뭣 때문이냐’고 묻자, 미도리마 씨가 '거기서 너에게 부탁이 있다.' 고 말했습니다."

"…부탁이요?"


미야지가 묻자,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둘러본 후 목소리를 낮췄다.

 

"…비밀로 해 주시겠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미야지가 수긍하자, 남자는 꼭 부탁한다고 다짐을 받은 후 말을 이어나갔다.

 

"…건강검사에는, 혈액검사도 있습니다. 저는 혈액임상병리사입니다만…그, 부모님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의 혈액을 몰래 자기에게 가져다주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정말인가요…."

"정말입니다. 사정이 사정이었고, 미도리마 씨가 아주 진지한 모습이라 무서울 정도라서, 전 왠지 그가 불쌍해서 부탁을 들어주었어요. 그러자 미도리마 씨는 굉장히 기뻐하면서, 바로 친자검사를 해 본다고 혈액을 받아갔어요. …실종은 그 직후입니다. 솔직히 전 친부모님이 원인이라고 생각했어요."

"…말씀해 주셔서…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미야지는 혼란스러웠다.

미도리마가 입양아? 이제 와서 실종 원인 후보가 하나 늘어나는 건가?
 

그 후 미도리마의 소지품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야지는 깊은 감사를 전하고 병원을 뒤로 했다. 도중, 키무라에게 지금부터 그쪽으로 간다고 연락을 하자, 조금 겁에 질린 모습으로 "이 집 어쩐지 이상해." 라고 말했다.

뭔가 섬뜩하다고 한다.

 

뭘까? 미도리마 녀석, 어디서 이상한 물건이라도 주워온 걸까.

미야지는 정신적으로 지쳐, 어딘가 무책임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


미야지가 키무라와 합류했을 무렵, 오오츠보에게도 앞으로 15분 후에 합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15분이라면 오오츠보를 기다리기로 두 사람 다 의견이 일치해,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수와 음식을 사서 우선 배를 채우기로 했다.

 

두 명이 편의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침 오오츠보와 마주쳐, 세 사람은 길을 걸으며 빵과 주먹밥을 베어물고 차를 마셨다. 그리고 서로 얻은 정보를 교환했다.

 

키무라가 가스와 전기, 수도가 멈추지 않았다고 말하자,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역시 미도리마는 어떤 사건에 휘말린 걸까?

곧이어 오오츠보가 타카오의 유골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리고, 마지막으로 미야지가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자, 오오츠보가 반응을 보였다.

 

"…타카오의 부모님이, 미도리마에게 건강검진을 권유받았다고 했어…."

"뭐어? 미도리마 녀석 그렇게 이곳저곳에 건강검진을 홍보하고 다녔나?"

"아니, 잘은 모르겠지만 저렴한 가격이라며 권했다고 했어."

"…미도리마,  『친부모』의 건강검진도 저렴한 편이라며 권했다고 했는데? 실은 자기가 돈을 냈던 것 같지만…."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오오츠보와 미야지에게, 키무라가 물었다.

 

"결국 그거지? 상황으로 미루어 보면, 미도리마의 친부모는 타카오라는 사람의 부모님이란 거지? 사실은 형제였나? 미도리마와 타카오는."

 

키무라의 물음에,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침착을 되찾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절대 아니잖아. 왜냐하면 미도리마, 어머니랑 꼭 닮았으니까."

"그렇네. 남인데 그렇게 닮을 리 없어."

"닮은 아이를 입양한 가능성은?"

 

키무라의 이어지는 물음에, 오오츠보는 신음소리를 냈다.

 

"없는 건 아니지만…난 미도리마가 동료인 임상병리사에게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해."

"뭐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미도리마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까 싶어."


오오츠보의 말에 미야지도 수긍했다.

 

"그 녀석, 럭키 아이템이나 원하는 걸 위해서라면 인사를 다한답시고 슬쩍 감쪽같은 거짓말을 할 때가 있지. 확실히."

"뭐 하는 사람이야."

"괴짜야. 그보다, 여기서 이러쿵저러쿵 해 봐야 별 수 없지. 잠깐 미도리마의 어머니에게 여쭤볼게."

 

그렇게 말하고 미야지는 휴대폰을 꺼냈다. 전화하는 미야지의 모습을 오오츠보와 키무라는 잠자코 바라봤다. 2, 3 분 정도로 전화를 끝낸 미야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접 낳으셨다고 하셨어. 왜 그런 걸 묻냐고 하시길래, 미도리마의 직장에서 그런 소문이 있었다고 얼버무리니까 화나신 것 같아."

"미도리마는 뭘 하고 싶은 거지?"


키무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미야지도 수긍했다.

 

"전혀 모르겠어…."

 

노숙인들과 친해지고, 타카오의 유골을 훔치고, 타카오의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혈액을 손에 넣었다.

 



뭘 하고 싶었던 거야? 미도리마.

 

 


 


 


 


 


 


 

 


 


 


 

***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오늘 처음으로 미도리마가 산 단독주택을 방문했지만, 키무라는 두 번째 방문이다.

1층은 가장 안쪽 방 이외는 대부분 조사했고,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럼 2층에 가 보기로 했다.

2층은 방이 세 개. 그 중 두 개는 응접실인 것 같다. 응접실에서 별다른 소득 없이, 세 사람은 미도리마의 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과연 의사구나…."

 

키무라의 중얼거림에 오오츠보나 미야지도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높은 책장에 대량의 책. 인텔리라는 느낌이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전원은 완전히 끊겨 있었다. 키무라는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고, 전원을 넣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충전될 때까지 클로젯 안을 조사하기로 했다. 오오츠보는 책상을, 미야지는 책장을 각각 조사했다.

클로젯 안에는 1층 창고와 같이 통일성이 없는 물건만이 들어차 있었다. 아기 바다표범 봉제인형을 무의식 중에 귀엽다고 생각한 자신이 있었다. 고마쨩은 정의다.

 

눈에 띄는 것을 찾지 못한 채, 키무라는 휴대폰 전원을 켜기 위해 충전기 옆으로 돌아갔다. 메일을 대충 훑어보고, 키무라는 기묘한 것을 깨달았다. 키무라의 친척들에게 일을 소개하고 있었다면, 취직처와는 분명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텐데, 그런 종류의 메일이 일절 없는 것이다.


미도리마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방금 전 오오츠보의 이야기를 떠올린 키무라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안 좋은 예감이 든다. 미도리마는 정말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을까. 정말로 키무라의 친척에게 일을 소개했던 걸까. 

그 외에 별다른 정보는 없었고, 키무라는 떨떠름한 기분을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개를 들자, 오오츠보와 시선이 마주쳤다.

 

"일기를 찾았어. 책상 카펫 아래 판자가 벗겨져 있었고, 거기에 숨겨져 있었어."

 

가볍게 올라간 손에는 검은 가죽 일기장이 두 권 쥐어져 있었다.

 

"아!!"

 

키무라가 그 쪽으로 향하려고 했을 때, 미야지가 경련이 일어난 듯한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지 돌아보자, 미야지는 책 한 권을 손에 든 채 굳어있었다.

 

"왜 그래?"

 

방향을 바꿔 미야지에게 다가가자, 미야지는 새파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가, 이 책을 보면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 말을 들은 키무라도 그 책에 눈을 돌렸다.

피부 아래에서 거품이 이는 듯한 감각. 1층 복도 가장 안쪽 방에서 느낀 것과 같은 공포가 키무라를 덮쳤다. 아까처럼 쇼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키무라는 곧바로 냉정함을 되찾았지만, 미야지는 위험한 것 같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명백하게 상태가 이상했다. 일단 책을 건네받은 키무라는, 미야지를 미도리마의 침대에 앉힌 후 오오츠보를 불렀다.

  

"기분 나쁜 책이네."

 

오오츠보는 낮은 목소리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지?"

 

제목은 일단 쓰여 있지만, 솔직히 읽을 수 없다. 이건 무슨 언어일까? 페이지를 휙휙 넘기자, 오오츠보도 키무라도 왠지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무슨 언어인지 몰라 읽을 수 없다. 나쁜 예감 밖에 들지 않던 키무라는, 책을 다시 책장에 되돌려놓자고 제안했다. 고개를 끄덕인 오오츠보는, 마지막으로 적당히 책 페이지를 넘겼다.

 

"아."

"왜 그래?"

"아니, 방금 뭔가 끼워져 있었어."

  

그렇게 말하고 오오츠보는 무언가가 끼워져 있었다는 페이지를 펼쳤다. 그곳에는 확실히 메모지 같은 것이 끼워져 있었다.

 

"미도리마의 글씨야. 뭐지? 이 페이지의 번역인가?"

 

오오츠보는 그 내용을 대충 읽고, 곧바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난폭하게 책을 덮고. 키무라에게 되돌려 주지 않겠냐고 부탁한 후, 책상 의자에 비틀비틀 걸터앉았다.

 

"뭐가 쓰여 있었는데?"


오오츠보가 진정하기를 기다린 후 키무라가 묻자,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띄운 오오츠보가 설명을 시작했다.

 

"사자 소생(死者蘇生)과 그 의식의 방법이, 간단하게 적혀 있었어. 번역하는 도중에 미도리마가 내용을 정리하면서 쓴 게 아닐까 싶어."

"…사자 소생? 무슨 책이야? 저거."

"잘은 모르지만 사교(邪教)나 흑마술같은 종류의 책 같아. 과거의 인물을 재구축해서 소생시킨다거나, 대량의 정신력이 필요하다거나…신화 속 생물인 '라플라스의 악마'를 불러낸다거나…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쓰여 있었어……일기를 읽어봐야 할 것 같아."

 

아마 거기에 모든 것이 쓰여져 있을 것이다. 오오츠보가 새파란 얼굴로 일기를 힐끗 바라보았다.

겨우 안색이 돌아온 오오츠보, 미야지와 함께, 세 사람은 미도리마의 일기를 대충 훑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은, 아직 타카오가 살아 있었을 무렵이었다. 오오츠보와 미야지는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다.

미도리마는 행복해 보였다. 흡족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것이 전해져 왔다. 이따금, 오오츠보와 미야지의 이름이 등장했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세 사람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반부가 되자 단숨에 일기의 내용이 바뀌었다.

타카오가 죽은 것이다.


타카오가 죽은 날로부터 한 달간의 일기는 쓰여 있지 않았다. 그때까지 매일 세세하게 적혀 있던 만큼 그것은 이상했지만, 그때의 일을 아는 미야지와 오오츠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시기의 미도리마는 폐인 직전이었다. 한 달이 경과한 즈음부터, 난폭한 내용의 일기가 시작되었다. 일기라기보다, 갈 곳 없는 감정을 글로 만들어 어떻게든 발산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타카오를 친 가해자에 대한 원망으로 시작해, 일상의 모든 것을 저주하고 있는 듯한 내용이었다. 이 시기엔 감정에 격렬한 파도가 몰아친 것 같았고, 쓰고 있는 동안 슬퍼졌는지 언제나 마지막은 타카오를 만나고 싶다는 비통한 문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타카오의 유골을 훔쳐 온 것은, 아무래도 이 즈음 같았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것이 이유인 듯했다.

타카오가 곁에 돌아와 잠시 동안은 일기의 내용도 안정됐지만, 역시 차가운 상자에 담긴 뼈만으로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곧 다시 타카오와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반복되었다.
 

한동안 이런 상태였지만, 반년이 지난 무렵부터 미도리마의 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타카오를 되찾을 방법이 없을까 하는 사고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동안 수상한 책을 들여오는 등, 방법을 모색하고 있던 것 같지만, 어느 날 아무래도 그 방법을 발견한 것 같다.
 

그때까지는 왠지 모르게 들떠 현실성이 없고, 미도리마의 초조만이 문면에서 전해져 왔지만, 목표가 정해진 날부터 명백하게 일기의 내용에 계획성과 현실성이 더해져 갔다.

 

여기서부터 단번에, 일기는 흑마술서같은 내용으로 변해갔다.

이 일기는, 미도리마의 계획서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조금 전 수상한 책의 메모와 같이, 사자소생에 관한 부분이 자세히 정리되어 있었고, 미야지는 거기서 다시 한번 포기했다.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쉬라고 침대에 앉힌 후, 오오츠보와 키무라는 함께 계속해서 일기를 읽어나갔다.

 

아무래도 미도리마는, 이런 현실성 없는 꿈같은 의식으로 진심으로 타카오를 되살릴 생각이었던 듯했다. 미도리마는, 타카오를 재구축하는 계획을 짜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걸 위해서는 신화 생물인 '라플라스의 악마'의 힘을 빌린다든가 하는 것들이 쓰여 있었지만, 솔직히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오오츠보와 키무라가 알게 된 것은, 그 존재가 타카오의 몸을 소생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뿐이었다.


그런 게 가능할까 생각했지만, 일기 안에 미도리마의 해석이 쓰여져 있었다. DNA의 구성은 물론 뇌세포 레벨까지 타카오와 동일한 존재를 구축할 수 있다면, 그 모습도 기억도 동일한 존재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미도리마가 소환하려고 하는 '라플라스의 악마'는, 이 우주의 모든 원자, 분자의 위치를 과거부터 미래에 이를 때까지 전부 알고 있는 존재이며, 물론 타카오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고, 어떻게 타카오를 형성하고 있었는지도 원자 레벨로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악마의 힘을 빌리면, 타카오를 되찾을 수 있다.

그것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미도리마의 일기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소환을 위한 마법진이나 주문 같은 것들에 대해 적혀 있었지만, 아무래도 도중 큰 오산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라플라스의 악마는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불러낼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라플라스의 악마를 불러내려면, 인간의 정신의 힘…생명력과 같은 것일까? 그것을 대가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 같지만, 미도리마 혼자서는 어떻게 해도 조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준비를 갖춰야 해. 협력자가 필요하다.』

 

일기에 쓰여져 있는 내용에 의하면, 그리고 일주일 뒤 미도리마는 이 단독주택을 샀다.


『지하실이 있는 집은 좀처럼 없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바로 결정했다. 의식을 행하기에 딱 좋겠지.』

 

이 집에는, 아무래도 지하실이 있는 것 같다. 아마 1층 복도 가장 안쪽의 방에 입구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일기는 단번에 참혹함이 늘어났다.

미도리마는 신분을 속여, 노숙자 등 일감이 없어 곤궁한 사람들에게 일을 소개해준다며 세치 혀로 속여 집으로 유인한 것 같다. 그리고 수상한 의식을 통해 그들로부터 의식에 필요한 힘을 빼앗았다고 쓰여 있었다. 물론, 의식에 사용된 인간이 그냥 넘어갈 리 없다. 미도리마의 일기에는, 감정 없이 쓰여 있었다.

 

『협력자들은 사망했지만, 이것도 목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미도리마의 이 흉행은, 그 후 수십 명에 걸쳐서 반복되었다.

여기서 키무라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즉, 『협력자』가 된 키무라의 친척은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는 것이 된다.

 

"말도 안 돼…."

"…키무라…."

"솔직히…친척이…일을 소개받았다고 들었을 때부터,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없다고는…생각하고 있었어. 외면하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사실 각오는 하고 있었어. 설마 이런 형태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장기매매라도 당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미안, 조금 쉬게 해 줘."

"…그래…."

 

키무라는 그렇게 말하고, 오오츠보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혼자 남겨진 오오츠보는 일기를 계속 읽어나갔다. 어느 특정 인간…이번처럼 타카오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그 인간의 『정보』가 필요하다고 한다.

 

소생시키고 싶은 인간의 일부와, 그 인간을 이 세상에 낳은 인간…즉 그 인간의 부모의 일부. 이 두 가지를 갖추는 것으로, 라플라스의 악마가 재구축해 주길 원하는 존재를 지정할 수 있는 듯 하다. 그 두 개의 정보를 갖고, 라플라스의 악마는 자신이 아는 과거 세계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 인물을 재구축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도리마의 일기에는, 타카오의 일부에는 유골을 이용하고, 타카오의 부모님에게 의심받지 않게 그들의 일부를 손에 넣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의심받지 않고 손에 넣는 방법. 그 방법이 건강검진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역시 미도리마는 동료에게 거짓말을 했던 모양이다.


『곧 타카오의 부모님의 혈액이 손에 들어와서, 준비는 모두 갖추어진다. 당장이라도 라플라스의 악마를 불러내자. 이걸로 타카오가 돌아온다.』



 

거기서, 일기는 끊겨 있었다.

 

딱 삼 주 전, 미도리마가 실종된 전날의 일이었다. 이 사실은 뭘 의미하고 있을까. 의식이 성공해, 소생한 타카오와 함께 미도리마는 모든 것이 발각되기 전에 자취를 감춘 걸까?

 

그렇다면, 어째서 미도리마만큼 신중한 남자가 이만큼의 증거를 남겨 뒀을까? 일기 속에는, 라플라스의 악마는 계약으로 잡아둘 뿐 결코 인간에게 우호적인 존재는 아니며, 오히려 해를 끼치는 존재라고 쓰여 있었다.

 

미도리마는 소망을 이룬 후, 불러낸 라플라스의 악마를 돌려보낼 준비도 제대로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왜, 이 집에는 아직도 이렇게나 섬뜩한 공기가 감돌고 있을까?

 

어떻게 된 것일까?

즉 미도리마는 의식에 실패한 것인가?

무사한 걸까. 그럴 리 없다. 그렇다면 혹시, 변해 버린 모습으로 괴물과 함께 지금도 지하에 누워――――――――――?

 

 

 

 

 

 


 


 


 


 

 

 

 

 

 

 

 

 

 

 


 


 


 


 

 


 


 

푸하하하하핫!

힘차게 웃음을 터트린 타카오가 등을 떨며 깔깔 웃고 있다.

 

"신쨩이…신쨩이…광신도…푸하하하핫! 신쨩이 광신도라니! 오하아사 광신도…푸풉, 잘 어울려. 하하하!"

 

너무 웃어 배가 아픈 것 같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은 타카오의 뒤통수를 미도리마가 무릎으로 가볍게 치자, 균형을 잃은 타카오는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아직도 웃고 있다.


"너는 정말로 시끄러운 것이야, 타카오. 그보다 선배들도 신경 쓰지 마세요.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너는 괜찮다는 말 정도는 귀엽게 해라. 맞고 싶냐."

 

저녁으로 먹을 전골 준비를 하면서, 미야지는 미도리마에 말했다.

 

"그나저나 미안했다. …이름이 그린이라 안이하게 미도리마로 해 버렸어. 설마 저런 역할일 줄은 몰랐어."

 

오오츠보가 침통한 표정으로 재차 사과하자, 미도리마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뇨, 선배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닌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린은 지하실에서 어떻게 된 거죠?" 

"몰라. 그린의 일기를 전부 읽었을 때, 이건 실존 인물의 이름을 쓰면 안 되겠다고 모두 의견이 일치해서…. 그 스토리에 네 이름을 쓴 채로 게임을 진행하는 건 좀…그래서 세션은 그만뒀어. 저기 미야지, 그거 마지막에 어떻게 됐어?"

 

키무라의 질문을 받은 미야지는 준비하던 손을 멈추고 시나리오를 넘겼다.


"아―…아무래도 그린은 역시 의식에 실패해 죽은 것 같아. 라스트 보스는 어중간하게 되살아나 엉망진창이 된, 이미 캐시가 아닌 좀비 캐시와 라플라스의 악마다. 일기 안에 돌려보내는 방법이 있어서 라플라스는 그렇게, 캐시는 전투로 쓰러트릴 예정이었는데…." 

"그 시나리오, 플레이어 세 명은 힘들 것 같네요. 하지만 재미있는 스토리잖아요~. 저흰 괜찮으니까 끝까지 플레이하면서 좀비인 저를 쓰러트리면 좋았을 텐데."

 

웃음 지옥에서 부활한 타카오가 미야지의 뒤에서 시나리오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너 방금 전 키무라 얘기 듣고 있었냐? 우리들이 싫었다고! 확 찔러줄까!! 자!! 전골이다!! 됐으니까 이제 먹자!"

 

덧붙여서 야채는 고맙게도 키무라가 제공해 주었다.

휴대용 버너를 점화한 미야지는 아직 코트도 벗지 않았던 타카오와 미도리마에게 냉큼 코타츠에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다 먹으면 이번엔 다섯 명이서 크툴루 해요. 저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 이번엔 아는 사람을 NPC로 삼지 말자. 우리도 부끄럽다고 캐릭터를 그대로 자기 이름으로 하는 건 관둬야겠어."

 

컵에 입을 대면서, 오오츠보 선배가 절절히 중얼거렸다.


"선배, 캐릭터 이름 본명으로 한 거에요? 푸풉,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요."

 

 

 

 

 


 


 


 

 

 


 

***


"아~재미있었어."

 

선배의 집에서 돌아가는 길을, 둘이서 나란히 걸으며 타카오는 웃었다.

 

"너는 바보라는 것이야. 무작정 방에 돌진하는 건 바보가 하는 짓이다."

 

다섯 명이서 플레이한 크툴루의 이야기다. 타카오는 탐색 중 두 번 정도 부주의하게 방으로 돌진해, 한 번은 죽을 뻔했다. 주사위 운이 좋아서 죽지 않고 끝났지만, 그것은 십중팔구 죽을 위기였다.

 

"그치만~ 처음엔 보통 그런 거 아냐? 그보다 신쨩도 크툴루는 처음이지? 그런 것 치고는 전체적으로 실수가 없었지만 말야."

"인사를 다하고 있으니까."

"그러네―."

 

예상대로의 대답에 타카오는 웃으며, 미도리마에 장난스럽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선배들이 우리가 오기 전에 하고 있었던 시나리오, 선배들은 『절친』 설정으로 한 모양이지만, 사실은 캐시와 그린은 연인 설정이었던 것 같지 않아? 나 선배들에게 들킨 줄 알았어."

 

우리가 사귀고 있는 거.

타카오가 중얼거리자, 미도리마는 콧방귀를 뀌었다.

 

"…남자끼리 사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아."

"뭐 그렇지~. 그치만 말야, 선배들도 나와 신쨩의 이름을 NPC에 쓴 건 비밀로 하면 됐을 텐데,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해 줬잖아. 시나리오가 어떻게 될지 몰랐던 것 정도야 알고 있는데. 의리 있지 않아? 나 정말로 선배들이 좋아."

"글쎄. 그린의 그 정도 소행은 귀여운 편인 것이야. 하지만 내가 그린이라면 반년이나 구질구질하게 고민하지 않고, 자살 같은 멍청한 짓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사자 소생 방법을 모색할 거다. 그 부분은 솔직히 불만이라는 것이야."

"푸핫! 역시 신쨩."


미도리마다운 생각에 타카오는 다시 웃었다. 미도리마는 말을 계속했다.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 어설픈 마무리는 하지 않는 것이야. 좀 더 시간을 들여 계획을 가다듬은 다음, 어떤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의식을 성공시킨다. 애초에 라플라스의 악마는 유효한 수단이지만 제어가 어렵다는 걸 생각하면 수지가 맞지 않아. 좀 더 조사하면 좋은 방법은 많다. 방법을 철저하게 모색한다면 연구만으로 10년은 우습다. 그 후 연구와 병행한 준비에 10년은 더 걸려. 나라면 최소 계획에 20년은 걸린다. 그런데도 그린은 계획에 실제로 일 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야. 그러면 실패하는 게 당연하지. 인사를 다하지 않았다."


단숨에 쏟아진 미도리마의 말 뒤에, 어른거리는 불길 같은 것을 느낀 타카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신쨩, 굉장히 자세한데? 혹시 실은 크툴루를 꽤 좋아하는 거 아냐? 말투를 보면…혹시 신쨩 오리지날 시나리오 생각한 적 있어? 굉장히 난이도 높은 거. 여간해서는 해피엔드를 맞이할 수 없을 법한 거."

 

타카오가 묻자, 미도리마는 콧방귀를 뀌며 끄덕였다.

 

"맞다."

"정말?하하, 그럼 있잖아!! 그 시나리오 다음에 하자! 신쨩이 만들었다니, 나 진짜 해보고 싶어."

 

타카오는 꽤나 흥미가 생겼다. 선배들은 하루에 두 번이나 게임을 해 지쳐버린 것 같고, 키퍼인 미야지에 이르러서는 '이제 그만….' 이라고 말했지만, 이래저래 선배들도 그 모습이라면, 피로가 풀린 후 한 번 더 해도 괜찮다고 할 것 같았다.

타카오의 제안에, 미도리마는 고개를 느슨하게 갸웃하며 웃었다.


"…벌써 플레이는 끝났다."

"정말?"

"내가 NPC로 나온다."

"키퍼인 거야?"

"뭐…그렇게 되는군."

"진짜? 신쨩이 만든 시나리오에 신쨩 키퍼라니, 엄청나게 인사를 다해서 플레이어에겐 정말 힘들 것 같은데. 그래서, 어땠어? 플레이어들, 제대로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었어?"

"나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자랑스러운 듯한 목소리. TRPG가 그러면 안 되잖아, 하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귀엽게 느껴져 타카오는 쿡쿡 웃음을 참았다.

 

"역시. 그치만 말야, 신쨩이 그만큼 자신 있는 시나리오라면 몇 번이나 해도 좋잖아. 한 번 더 하자."

 

타카오가 물고 늘어지자, 미도리마가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고개를 저었다.

 

"내 쪽도 준비가 꽤 필요하고, 굉장히 힘든 것이야. 이제 두 번 다시는 싫어."

"정말? 신쨩, 키퍼 싫어?"

"일생에 한 번으로 충분해."

"푸핫, 그 정도야?"

 

유감이네. 미도리마에게 몸을 부딪히듯 매달리며 타카오가 웃자, 문득 미도리마의 손이 타카오의 손가락 끝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타카오."

"응?"

"타카오."

"뭔데? 왜 그래, 신쨩."
 

어리광 부리고 싶어? 타카오가 미도리마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어주자, 미도리마는 그 손을 꼭 잡았다.


정말 너, 사랑스러워. 먹어버리고 싶어.

타카오도 미도리마의 손가락을 꼭 잡았다. 이 추운 날씨 속에서, 억누를 수 없이 따뜻한 기분이 된 타카오가 무심코 웃자, 미도리마가 툭 내뱉었다.


 

"타카오."

"응―?"

"이제, 나보다 먼저 죽는 건 용서하지 않아."

"…………응?"



 

타카오가 19센치 위의 얼굴을 올려다봤을 때, 미도리마가 구멍이 뚫릴 만큼 강렬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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