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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브가 튀어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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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novel/show.php?id=1722854, 蟹 님


 

 

6 : 사축은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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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쨩에게 연인이 생기는 것이, 언제나 조금씩 무서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해하거나 트집을 잡으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신쨩은 내게 먼저 확실히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예를 들면 주말에 약속을 잡기 어려워지거나 둘이 만나고 있을 때 신쨩의 휴대폰에 메일이 도착하거나 하는, 그런 사소한 일로 내가 멋대로 추측하고 캐물어, 그렇게 듣고 나면 꼭 축하해 주었다. 

 

 

나는 신쨩을 좋아하고, 그 중 대부분은 우정을 크게 뛰어넘은 진흙 묻은 호의였지만, 그런데도 친구로서의 미도리마를 소중히 여기고 싶다는 마음 또한 내 안에 분명히 남아 있다.

신쨩에게 연인이 생기는 것이 무서웠지만, 그런데도 연인이 생긴 걸 알게 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서툴고 무뚝뚝하고 제멋대로에 사랑스러운 이 친구의 주위에, 소중히 연모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나에게 있어 씁쓸하면서도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신짱에게 연인이 생긴 걸 알게 되어, 마음이 편한 것까진 아니지만 나름의 진심으로 환호와 축복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신쨩의 안에서 나와 그 연인을 비교했을 때 내가 차지하는 부분이 더 크고 깊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쪽이 훨씬 대체 불가능한, 소중하고 소중한 파트너라고.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나는 그런 바보 같은 확신을 갖고 있었을까.

 

 

 

 

 

뒤죽박죽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더니, 눈을 떴을 때는 최악이었다.

머리가 무겁다. 눈 밑엔 다크서클이 내려와있다. 거울 속의 나는 가라앉은 눈을 하고 있다. 확실히 말해 무섭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 씩 웃어보니, 더욱 기분 나쁜 얼굴이 되어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아ー…월요일인가."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월요일은 오랜만이다.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 비하면 업무에도 익숙해졌고, 그 나름대로 즐겁기도 하고, 컨디션 관리의 요령도 생겨, 이렇게 머리와 가슴이 무거운 월요일은 오랫동안 없었던 것이다.

 

"위장약 어디야, 위장약…" 

 

아무것도 먹을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먹지 않으면 몸은 더욱 무거워진다. 샘플로 받은 위장약과 함께 억지로 어제 남은 돼지고기를 먹고, 양치질 후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는다. 뺨을 양손으로 짝짝 두드린다. 침대 안에서 온종일 웅크린 채 아무 생각 없이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일이 필요하다.

 

"…좋아!"

 

일단 웃어본다. 어쨌든 일할 수 밖에 없다. 일단은 일할 수 밖에 없다.

 

 

 

 

 

"어라, 타카오, 오늘 빨리 왔네."

"오ー좋은 아침. 성공하는 남자는 아침형 인간이라잖아."

"아침형 인간은 회사에 빨리 출근하는 거였나? 썸머 타임과 같은 뜻?"

"아침에 활동하면 일단 아침형 인간이 아닐까?"

 

 

평소처럼 나가기 전에 뉴스를 체크할 마음도 들지 않아, 밥만 먹고 집을 나왔더니, 머리도 마음도 이렇게 무거운데 직장에는 일찍 도착해 뭔가 의욕이 흘러넘치는 것 같다.

 

 

"오늘부터 나를 사축이라고 불러줘."

"뭐?"

"그리고 미팅에는 전부 불러줘."

"그 두 개 동시에 할 수 있는 거야?"

"할 거야. 해 버릴 거야. 지금 내게 남은 건 일과 성욕뿐이야. 그러니까 일단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어."

"뭐야 그거 멋있어."

"부탁할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아침부터 어쨌든 자료 만들기에 몰두했다.

이번 주는 화·수·목 3일 연속으로 정보 제공 예정이 들어있다. 대부분의 자료는 지난주 중에 벌써 완성했지만, 그 후 우연히 대기중에 얘기를 나누게 된 의사로부터 몇 가지 에비던스 문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자료 안에 넣어 가야 한다.

읽어야 하는 논문이 네 개. 시대가 발전해 웹상이면 단어 수준은 커서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자동 검색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시간에 맞는 일정이다. 옛날 같으면 일일이 종이사전을 찾았을까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오싹해진다.

 

영어를 읽고 있으면 아무래도 졸음이 쏟아져, 수 차례 커피 서버와 자신의 데스크를 왕복하면서, 계속 읽어나간다.

이럴 때 매의 눈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끔 그래프에 주석을 넣거나 스터디 편성을 욕하고, 커피를 과음해 이뇨가 활발해진 방광을 움켜쥐고 화장실에 가거나 하면서, 오전이 지난다.

 

 

"타카오,"

"응ー?"

"야, 타카오!"

"아? 뭐?"

"너 정말, 왜 그래. 이 사축아? 점심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있잖아."

"아ー, 뭐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고개를 들자, 주변 데스크가 한산하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면, 12시 반이다. 목을 돌리자 우드득 뼈가 울었다.

 

"벌써 그렇게 됐어.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집중하고 있는 거야? 풍속점 최신 경향이라도 써 있어?"

"그래그래, 최근 기후현 소프가 엄청나다는 뉴잉글랜드 저널 보고가 있어. 너도 읽을래?"

 

그렇게 말하면서 책상에 쌓여 있던 논문을 적당히 들어 팔랑팔랑 흔들자, 얼굴을 찌푸린다. 스스로도 재미없는 농담이라고는 생각한다.

 

"기후현? 멀어. 필요 없어. 그것보다 점심."

"음ー"

 

 

볼펜으로 머리를 거칠게 긁는다. 눈이 건조해서 조금 아프다.

 

 

"괜찮아. 난 나중에 매점에서 적당히 사 먹을게. 먼저 가."

"알겠어. 너도 적당히 해라."

"예ー이"

 

 

마드리드 스타벅스에서 산 커피 텀블러에는 아직 약간 싱거운 커피가 남아 있다. 그것을 전부 들이킨다. 눈 위에 손등을 대고 눈시울을 문지른다. 과연 조금 지쳤다. 서랍에서 안약을 꺼내 양 눈에 넣는다.

 

"으ー…"

 

스며든다. 눈을 깜빡인다. 의자를 끼익끼익 흔들면서 천장을 바라본 채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아무래도 어제 마지막에 본 미도리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걸 떨쳐버리고 싶어서 머리를 흔든다. 물론 그걸로는 사라지지 않아, 한숨을 쉬고 어쩔 수 없이 눈을 떠 휴대폰을 꺼냈다.

 

 

『To 신쨩

Subject 미안

 

어제는 미안

내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신쨩과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는 생각 못 해서, 조금 놀랐어.

이상한 소리 해서 미안.

만나서 제대로 사과하고 싶어.

다음에 언제 볼 수 있어?』

 

 

글 내용을 바라보고, 또 조금 한숨이 나온다.

도대체 뭐가 미안해서, 뭘 사과하고 있는지, 나조차도 이젠 알 수 없다.

애초에 내가 신쨩을 친구와는 다른 호의로 보는 게 원인이지만, 그것에 대해 내가 신쨩에 사과할 일은 평생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 마음을 고백할 일이 평생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겉치레뿐인, 알 수 없는 사죄와 죄악감만이 남는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나는 널 만나고 싶어. 목소리가 듣고 싶어.

 

송신 버튼을 누르고 뒤를 돌아본다. 한 줄 뒤 데스크에서 후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점심 먹으러 안 가?"

 

살짝 웃고, 방금 눈치챈 것처럼 그렇게 말을 건다. 아주 조금, 후배의 뺨이 상기된다.

 

 

"아, 저기, 금요일에 체크해 주신 파워포인트, 주말에 지적해 주신 부분을 고쳤는데…최종 확인 부탁드릴 수 있을까 싶어서요…그치만 오늘 바쁘시죠?"

"응? 괜찮아. 오전에 너무 의욕넘치게 일했더니 시간이 남네. 지금도 괜찮아?"

"부탁드립니다!"

 

 

USB를 가지고 후배가 달려온다. 좋네. 사랑스럽네.

USB 안에서 파일을 찾아 열고, 지난주 확인한 그래프의 사이즈를 체크한다. 당연하지만 수정되어 있다. 다른 것도 조금씩 작은 변화가 있다. 꽤 보기 쉽다고 해야할까, 익숙하다고 해야할까, 묘한 위화감이 있어서, 그러고 보니 이전 체크했을 때 내가 만든 자료를 건네준 걸 떠올린다.

 

 

"좋네. 잘 된 것 같아."

"감사합니다!"

"내 자료, 조금은 도움이 됐어?"

"네, 굉장히요! 타카오 선배의 자료, 정말로 보기 편해서 살짝 따라해 버렸어요."

"그렇다니 기쁘네. 도움이 돼서 다행이야."

 

후배는 수줍게 웃는다.

 

"다음에 뭔가 답례하게 해 주세요."

"음, 그러면, 한가할 때 밥이라도 먹으러 갈까?"

"네, 꼭이요! 저 가게 찾아둘게요. 선배, 좋아하는 음식 있으세요?"

 

 

어라, 스무스. 데이트 약속 잡는 건 이렇게 간단하던가? 아니 데이트가 아닌가, 일단은. 그렇지만 뭐, 데이트라고 생각해도 괜찮을까. 분명 이 아이도 싫어하는 선배에게 굳이 먼저 약속을 잡지는 않을 것이다.

 

 

"글쎄, 생선이 맛있는 선술집? 그보다 여자에게 가게를 정하게 하다니, 나 못난 남자구나."

"아, 아니에요! 제가 답례하고 싶으니까요!"

"그래?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나중에 한가한 날 알려줘."

"네!"

 

 

후배는 꾸벅 인사하고 플로어를 빠져나갔다. 어디에 가는 걸까. 어디라도 상관없나. 여자에게는 여자의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아이다. 좋은 아이다. 배려심도 있다. 신쨩과는 달리 스스로 데이트 플랜을 생각해주는 적극성도 있다. 만약 내가 옷을 고르고 있으면 분명 함께 고민해 줄 것이다. 내가 그 아이의 옷을 골라주려고 해도 싫은 얼굴을 하거나 귀찮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사귀어 버릴까. 밀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ー…"

 

변변치 못한 자신에게 한숨이 나온다. 데스크에 턱을 괴고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쿡쿡 찌른다. 신쨩의 말대로인 걸까? 나는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할 수 없는 걸까?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마음의 대부분을 다른 인간에게 내준 채, 성의도 뭣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에겐 어쩔 수 없으니까.

 

신쨩이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어 버릴지도 모를 때에, 이번에야말로 진심으로, 몸도 마음도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어 버릴지도 모를 때에, 혼자 있을 수 있을 만큼 나는 강하지 않다.

 

 

오피스 남쪽은 유리 벽으로, 올려다보자 깨끗한 파란 하늘과 옆 빌딩의 칙칙한 흰 벽이 보인다. 까마귀가 가끔 하늘을 날아간다. 좋은 날씨다. 최근 계속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태풍도 없다. 오피스에는 사람도 적어, 고요하고 조용하다. 멀리서 가끔,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린다.

 

 

아아, 외롭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 사실은 제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지만, 그것이 무리라면 적어도 두번째라도 세번째라도, 좋아할 수 있을만한 상대와 함께 있고 싶다. 심한 언사일지도 모르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태도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면,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청렴결백한 성인군자로서, 신쨩을 향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일생을 혼자 보내라는 건가. 웃기지 마.

 

 

"아ー, 정말!"

 

 

사람이 적은 것을 구실로 나는 이마를 책상에 쿵쿵 부딪친다. 그리고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바라본다. 설마 이런 일로 끝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쨩도 그정도로 매정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만약 이 타이밍에, 신쨩과 신쨩이 좋아하는 상대의 사이에 뭔가의 진전이 생긴다면? 나와 조금이라도 거리가 벌어진 틈에, 상대와의 거리가 줄어들고 있다면?

그때 나는, 신쨩에게 잊혀지지 않을 수 있을까?

 

 "파트너가 들으면 기가 막히겠네. 젠장…"

 

 

신쨩이 행복하기를 빈다.

그 때문이라면 나는 평생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살아가겠다.

이 진흙탕같은 사랑에 말려들지 않도록, 제대로 신쨩을 누군가의 곁으로 배웅하자.

 

그런 것을 결심한 18살의 나는,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었을까.

 

사랑을 토해내지도 않고. 거절당한 후 단념하고 잊는 길조차 선택하지 못하고. 어째서, 자신이 평생, 그 강함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었을까.

 

 

안 돼. 생각할수록 시간 낭비다. 사축이다. 나는 사축이 된다.

 

"좋아!"

 

책상에 기대고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고, 소매를 걷어붙인다.

양손으로 뺨을 짝짝 두드렸다. 울지 않는 휴대폰은 가방에 던져 넣고, 다시 컴퓨터 액정을 향한다.

이번 주는 3일 연속 지옥의 정보제공! 그리고 갈 수 있는 한 미팅! 그렇게, 죽을 만큼 바쁘게 움직이면, 일단 살아갈 수 있다. 그것만은 틀림없다.

 

 

 

 

 

열심히 내일 몫까지 일을 반쯤 끝내고, 녹초가 되어 날짜가 바뀔 때쯤 집으로 돌아가자, 정확히 열쇠를 꽂았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From 신쨩

Subject 무제

 

당분간 세미나 준비로 바쁘다

시간이 나면 연락한다』

 

 

과연 창가에서 밤의 어둠을 바라보며 우울에 잠길 만큼은 상심했다. 어째서인지 흐릿해지는 휴대폰의 액정을 바라보며 답장을 보낸다.

 

 

『To 신쨩

Subject 수고했어!

힘들겠네, 무리하지 마!

나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저번에 신쨩 얘기를 듣고, 반성했습니다

앞으로는 성실한 타카오군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또 메일 주세요』

 

 

"무리하고 있는 건 나야! 바보냐! 젠장! 좋아해! 성실은 또 뭐야! 정말!"

 

 

휴대폰을 침대에 내동댕이친다. 더는 싫다. 정말 싫다. 자신이 싫다. 그런데도 융통성이 없는 신쨩은 이런 메일을 보내버린 이상, 세미나 준비가 끝나면 반드시 나에게 연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고소하다. 거짓말도 못 하고 얼버무리지도 못하는 불쌍하고 사랑스러운 신쨩.

 

 

"세미나 일정 확인해야지…"

 

 

그리고 그 날을 노려 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꼴 좋다 신쨩. 행복해졌으면 좋겠지만, 정말 본격적으로 네가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기 전까지는, 나는 네 옆에 있을 거야.

방해하지 않는 대신, 옆에 있을 거야. 옆에서 어드바이스하고 응원하고, 마지막에는 축복도 해 줄게.

 

 

그러니까 적어도 신쨩, 네가 누군가와 행복해질 때는, 그걸 가장 먼저, 누구보다 먼저 나에게 가르쳐 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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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추억만이 성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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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지, 기본안주?"

"그런 것 같네요."

"으음ー…아, 맛있다."

"아, 정말요."

 

 

야채 마리네가 작은 접시에 담겨왔다. 집어먹어 보면, 아삭아삭한 식감이 꽤 맛있다. 맛도 부드럽다.

그냥 삶아서 오일에 무친 것 치고는 기름기가 강하지 않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집에서 만들면 아마 신쨩이 좋아할 것 같은 맛인데.

 

안내된 자리는 입구에서 먼 창가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반쯤 세워진 대나무 발 너머로 유리를 타고 흐르는 물이 거리의 불빛을 번지게 하고 있다.

BGM은 재즈 피아노. 선술집이라고 하기엔 조금 고급스럽다.

 

 

"좋은 가게네. 어떻게 알아냈어?"

"옆 부서 동기가 알려줘서요…"

"으음ー. 다들 좋은 가게 알고 있네."

 

 

직장에서 그렇게 멀진 않지만 처음 와 봤다. 빌딩 반지하에 들어선, 선술집이라고 하기엔 조금 고급스러운 이 가게는, 안에 강과 다리, 대나무숲이 있어 좌석 사이가 가려져 있다. 커플이 애용할 것이다. 떠드는 학생도 없다.

요즘 젊은 여성은 첫 식사에 이런 가게를 고르는 건가? 그런 아저씨 같은 생각을 한다.

내가 10대였을 때도 젊은 여성은 이랬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지만.

 

윤기 없이 까끌까끌한 목판 테이블에 턱을 괴고 후배를 바라본다. 직장에서 나오기 전에 화장을 고쳤겠지. 평소보다 훨씬 아이라인이 진하고 속눈썹도 두껍다.

이건 이거대로 사랑스럽다. 노린 듯한 흰 원피스도 사랑스럽다. 조금 전부터 계속 눈을 내리깔고, 그다지 이쪽을 보지 않는다.

나는 계속, 바보처럼 싱글싱글 웃고 있다.

 

 

"정보 제공, 잘 됐어?"

"아, 서포트 해 주신 덕분에, 어떻게든."

"다행이네."

"하지만 정말 타카오 선배 덕분이에요."

"천만에. 나도 좋은 가게를 알게 돼서 고마워."

 

 

맥주가 나왔다. 후배는 카시스오렌지. 뭐랄까, 그 너무나도 전형적인 선택에 박수 치고 싶은 레벨이다.

젖은 맥주잔을 받고, 내친김에 칵테일글라스도 받아 후배에게 건네주자 겨우 시선을 들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미소지었다.

 

 

"그럼, 건배"

"건배!"

 

맥주를 들이킨다. 꿀꺽꿀꺽 맥주가 목을 넘어간다. 당연히, 얼얼하게 차갑다.

 

"아ー, 맛있어!"

 

일하고 난 뒤에는 맥주가 제일이다.

 

"후후"

"응?"

"타카오 선배는 정말 맛있게 마시네요, 맥주."

"그래? 뭐 좋아하지만."

"굉장히 맛있어 보여요. 저 맥주는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보고 있으면 마시고 싶어져요."

"그럼 한 입 줄게."

"괜찮나요?"

"괜찮아. 아, 대신에 그쪽도 한 입 줄 수 있어?"

"아, 여기요."

 

 

맥주잔 표면을 물수건으로 닦은 후, 서로의 드링크를 교환한다. 뭐 카시스 오렌지는 어디서 마시든 맛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알코올이 제대로 들어가 있지도 않아 특별히 흥미는 없지만, 모양만 한 모금 마신다.

달다. 주스 같다. 도수가 낮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거 정말로 알코올 들어 있는 건가. 뭐 들어 있으려나. 이런 걸로도 헤롱헤롱 취하는 녀석은 있다.

후배는 맥주잔을 무거운 듯 들어, 맥주를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쓰네요."

"뭐, 맥주니까. 푸핫, 표정 장난 아닌데?"

"아, 어떡해, 죄송해요."

"괜찮아 괜찮아, 귀여워 귀여워."

"귀엽지 않아요."

"무슨 소리야. 그럼 뭐 좀 시킬까. 먹고 싶은 거 있어?"

 

 

두꺼운 화지(和紙)로 만든 메뉴판을 펼쳐 함께 들여다본다. 후배의 플로럴한 샴푸인지 컨디셔너인지 바디워시의 냄새가 났다. 그것이 어딘지 모르게 에마르와 비슷해서, 활약할 리도 없었지만, 예상대로 활약하지 않고 오히려 씁쓸한 전개가 된 내 방의 시트를 떠올리고, 또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아, 튀긴 두부 먹고 싶어요."

"좋네―. 그럼, 나는 사시미 산텐모리 먹고 싶어. 그리고 계란. 계란말이. 그리고 타코와사비. 아, 여기요!"

 

점원을 불러 적당히 주문한다. 내가 주문하는 동안, 후배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구멍이 뚫릴 것 같다.

 

"뭔가 묻었어?"

"네?"

"그렇게 쳐다보면 부끄러워.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 미안해."

"아니에요, 선배 굉장히 멋있어요. 다들 얘기하는걸요!"

"또ー또ー!"

 

그렇게 말하면서, 후배의 손에서 맥주를 받아들고, 카시스 오렌지를 돌려준다. 메뉴판을 접어 치운다.

 

"정말이에요!"

"정말~상냥하네~! 뭔가 남은 업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줘! 의욕만만으로 끝내줄 테니까! 휴일 반납하고 다 해 줄게!"

"그런 소릴 하시고…선배는 쉬는 날엔 뭘 하세요?"

"나? 음ー…뭐, 평일 몫까지 집안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 DVD 보거나 해."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후배는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뒤에서 타코와사비가 나왔다. 내친김에 맥주를 더 주문한다. 세련된 전등의 불빛을 받아 타코와사비가 빛난다. 아ー맛있어 보인다.

 

"의외로 인도어파네요?"

"뭐야뭐야, 좀 더 놀고 있을 것 같았어?"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엔 놀아 주는 상대가 없거든~."

 

특히 지금부터 세미나가 끝나는 10월초까지 한달간은. 타코와사비를 집어, 오독오독 먹는다. 딱 좋은 매움이다. 후배는 타코와사비에는 흥미없는 듯, 젓가락을 들어올리지도 않는다. 이렇게 맛있는데 아깝다.

 

"하지만 회사 분들과 자주 미팅하러 가시죠?"

"아, 그거, 그건 묻지 말아 줘. 얼마 전 동거하던 여자친구에게 차였거든. 별로 놀고 있는 게 아니라, 운명의 상대를 찾기 위한 성실하고 착실한 현지 조사니까."

"흐음?"

 

 

아, 좋아 좋아, 그 눈.

사냥감을 정중하게 평가하는 그 눈, 좋다!

 

 

 

 

생선회도 두부튀김도 계란말이도 계절야채모듬도 테바사키도, 모두 제법 맛있었다. 가격도 적당하고 직장에서 가깝고, 앞으로도 이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신쨩을 데려오는 것은 그만두자.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직장 사람들에게 들키면 귀찮다.

자칫 잘못하면 업무상의 묘한 억측을 받을지도 모른다.

 

가게에서 나오자,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콘크리트에는 아직 열이 조금 남아 있다. 거리의 혼잡은 줄어들지 않는다. 점원이 불러준 택시에, 후배와 함께 탄다.

 

계산은 결국 각자 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답례든 뭐든, 그런건 독신 남자의 저녁에 젊은 여성이 함께 해 준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내가 낼 생각이었지만 후배가 꼭 내고 싶어 했다.

뭐 너무 강경하게 거절해도 오히려 속셈이 노골적인 것 같아, 절반씩 내자고 제안했다.

 

 

"죄송해요. 결국 반 내게 했네요."

"무슨 소리야! 나 얻어먹을 생각 정말 없었어. 같이 밥 먹어준 걸로 충분해."

"그런 말씀 하시지만, 선배, 함께 밥 먹을 사람은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렇지도 않아. 요즘엔 접대 말고는, 편의점이나 요시노야 같은 곳 뿐이야."

뭐, 거짓말이 아니다. 플러스, 미팅이 있는 정도다.

"그럼, 나중에 또 식사 같이 하실래요?"

"좋지. 그런데, 그런 말 해도 괜찮아?"

"네?"

"나, 기대해 버린다고?"

"…좋아요."

"그래?"

 

 

맥주잔으로 3잔, 맥주 마셨다.

취하지 않는 양은 아니지만, 만취할 정도는 아니다. 판단이 흐려지는 양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지 않는 양은 절대 아니다.

 

그러니까, 기분 가는 대로 하기로 했다. 택시 뒷좌석에 두 명. 공간은 여유가 있다. 그 공간을, 조금 좁힌다.

 

창문 너머로 거리의 불빛이 반짝인다. 후배가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낀다. 나는 팔을 올려 손등으로 후배의 머리카락을 조금 어루만진다.

찰랑찰랑, 하나도 얽히지 않고 손에서 빠져나간다.

 

 

"예쁜 머리네."

"…그렇지 않아요."

"하하. 그 소리만 하네. 솔직하게 칭찬하게 해 줘."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조금 집는다.

예쁜 머리카락. 하지만 컨디셔너를 바꾸는 편이 좋을지도. 나에게 이 에마르를 닮은 향기는 조금 슬퍼지거든.

택시가 후배가 사는 맨션 앞에 도착한다. 문이 열린다. 나는 일단 웃으며 배웅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둔다. 후배는 택시에서 내려 다시 이쪽을 향한다. 흰 원피스가 살짝 부풀어 오른다.

 

 

"괜찮으시면, 차 한 잔 드시고 갈래요?"

"그래? 미안하네. 그럼 한 잔만. 기사님, 잠깐만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좋아."

"…혹시 그렇게 될 수도 있는데요."

"…알겠어, 그때는 꼭 알려 줘 형씨. 여기도 30분 기다려 줄 테니까. 부탁할게."

"네."

 

후배는 맨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방은 키친 별도의 원룸. 흔한 타입의 방이었다.

잘 정리되어 있다. 혹시 어제 열심히 청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주 토요일의 나처럼.

 

벽을 따라 침대와 책장. 그 앞에 큰 쿠션 세 개가 있다.

그중 하나에 걸터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후배가 말했던 대로 홍차를 가져왔다. 티컵에서 하얀 김이 희미하게 올라오고 있다.

 

"드세요."

"응, 고마워."

 

흰 바탕에 파란색 꽃무늬 컵이다. 플레이버 티로, 새콤한 향에 맛은 달콤하다.

 

"맛있어. 냄새가 좋네."

"친가에서 보내 주신 거에요."

"으음."

 

후배는 내 옆에 앉는다. 가게보다, 택시 안 보다, 지금이 가장 거리가 가깝다. 쿠션 뒤에는 침대가 있다.

나는 티컵을 테이블에 둔다. 후배는 아래만 보고 있다. 손을 뻗어 택시 안에서 한 것처럼 가볍게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후배가 시선을 들었다. 한동안 서로 가만히 바라본다.

 

 

마스카라가 두껍게 칠해진, 예쁘게 위를 향한 긴 속눈썹.

가늘고 작은 몸.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플로럴한 향기가 난다.

 

 

십대의 무렵과 비교하면 다소 진정되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성욕은 썩을 만큼 있다.

그리고 성욕 그 자체 이상으로, 사람 피부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그것은 별로 나쁜 건 아니다. 만약 나쁜 일이라고 해도, 참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아니, 생물의 최대이자 숙명적인 삶의 목적은 생식과 유전자의 계승인 것이니까, 누군가와 만나고 싶다거나 누군가와 서로 연결되고 싶다는 생각은 일반적이다.

정상이다.

특히 그것이 남자와 여자의 사이에서 싹트는 경우는, 설령 그 매개가 되는 것이 애정이 아닌 순수한 성욕이었다 하더라도, 그야말로 지극히 정상적인 생리 반응으로서 허락되어야 한다.

뭐 그렇다고 할까, 허락해주면 좋겠다. 성의가 없다거나, 진지하지 않다거나, 그런 순수한 말로 부정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깨닫고 보면 나는 손을 내리고 가지런히 티컵 안의 차를 다 마셔 버렸다.

묘한 침묵이 깔린다. 후배는 무릎 위에서 손을 잡고 있다.

나는 잠시 텅 빈 티컵 안을 바라보았다. 내 안에서, 조금 전까지 확실히 존재하던 성욕이 시들어 버린 것을 확인했다. 시들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다.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얼굴을 들었다.

 

 

"잘 마셨어."

"…네."

"그럼 돌아갈게. 오늘은 고마워."

"…네."

 

 

싱긋 웃는다. 후배도 조금 어색하지만 웃어준다. 고마워, 너는 어른이야.

 

 

 

 

 

맨션을 나와, 기다리고 있던 택시 창문을 똑똑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차 안에서는 에어컨이 켜져 차가워진, 그리고 담배 냄새가 나는 공기가 흘러나온다. 택시에 올라타자, 기사가 무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빠르네, 형씨."

"아하하~. 조루 같은 게 아니에요. 아니, 세상사가 그렇게 쉽지 않네요~."

"안 섰어? 너무 마셨나?"

"뭐, 그래요. 나이 먹기 싫다."

"윤켈이 좋아. 조금 비싼 걸로."

"정말요?"

"전에 태운 손님이 말해준 거지만. 다음에 마시러 갈 때는 가방에 넣어 둬."

"그렇게 할게요. 감사해요."

 

 

택시기사에게 발기부전 샐러리맨으로 기억되면서 집으로 갔다. 딱히 틀린 것도 아니다.

 

 

 

 

 

 

"다녀왔습니다ー…"

 

 

집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취기도 조금 몽롱한 정도까지 깨어 있었다.

도중까지는 나름대로 기분이 좋았는데, 왠지 이젠 엉망진창이다. 왜 거기에서 그만두었을까. 왜 식어버렸지.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얼마 전 신쨩이 말한 게 쇼크였을 것이다.

 

 

가방을 내던지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후, 냉장고를 연다. 주말에 사온 식재료는 아직 반 정도 남아 있다. 이 상태라면 역시 4분의 1은 버리게 될 것이다. 패트병에 든 야채 주스를 컵에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아ー…"

 

컵을 싱크대에 내던지고 머리를 휘저었다. 나는 바보다. 집까지 가 놓고. 뭐 하는 거지. 빨리 자자. 빨리. 일어나 있어도 쓸데없다.

 

 

 

 

샤워를 한 후, 맥주를 한 캔만 더 마시고, 양치질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에마르의 향기는 많이 옅어졌다. 눈을 감자 취기와 함께 사라졌던 성욕이 다시 돌아와, 조금 전 후배의 방이나 주말에 만난 신쨩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빙글빙글 맴돌았고, 그리고 나는 스무살 무렵의 밤을 떠올렸다.

 

 

 

 

 

그 무렵 나는 아직 지금 사는 집이 아닌, 조금 더 좁은 학생용 원룸 맨션에 살고 있었다.

신쨩도 나도 대학은 도내였고 학생이었던 신쨩은 지금과 비교하면 아직 한가해서, 자주 만나며 서로의 집에 오가기도 했다.

 

 

그날 밤, 나와 신쨩은, 저녁을 함께 먹고 맥주를 잔뜩 마셨다.

오늘과 같은 금요일로, 오늘과 같은 여름의 끝이자 가을이 시작될 무렵으로, 나는 오늘보다도 훨씬 많이 맥주를 마셨다. 신쨩은 맥주는 마시지 않고 달콤한 칵테일만 마시고 있었다.

거의 주스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코올도 거의 들어가 있지 않은 듯한 맛이었기 때문에 나도 마음껏 먹게 내버려 두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신쨩은 가게가 문을 닫을 무렵에는 완전히 주정뱅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는 아무리 술에 취해도 망설임 없이 택시를 부를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기에, 나는 고등학교 3년간 열심히 단련한 다리 힘으로 위태롭게 걷는 신쨩을 옆에서 부축하면서 근처에 있던 나의 집으로 데려갔다.

신쨩의 집은 지하철을 타면 곧바로 도착할 거리였지만, 벌써 막차는 끊겨 있었다.

 

문을 열어, 겨우 신발을 벗기고, 방에 들어가 침대까지 데려간다. 이제 내 허벅지는 덜덜 떨리고 있다.

신쨩은 크고 무겁다. 술에 취하면 더 무겁다.

 

"저기, 신쨩! 신쨩! 침대에서 자!"

 

그러자 신쨩은 휘청휘청 침대 옆에 주저앉아 침대에 얼굴을 묻고 신음소리를 냈다.

 

"이봐! 이봐, 미도리마! 거기서 자지 마! 제대로 침대에 올라가!"

"시끄러운 것이야, 타카오…"

"정말ー이 주정뱅이! 자, 하나ー둘, 셋!"

 

이쪽도 꽤나 취했는데 신쨩은 혼자 기분이 좋아져서, 내가 옆에서 부축해 침대에 올리려 하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체중을 거의 내게 실어, 무겁다.

 

"하? 뭐? 신쨩 뭐라고 했어?"

"더워…"

"네네, 에어컨 켰어요―! 그러니까 침대에서 자자. 코코넨네 하자."

 

 

간신히 크고 무거운 몸을 침대로 옮기고 나니, 나는 이미 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신쨩은 태평하게 자고 있다. 뭐 됐다. 어중간하게 깨서 우왕좌왕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편하다.

 

 

"…그럼 나 샤워하고 올 테니까, 착하게 자고 있어."

 

대답도 하지 않는다. 푹 잠들었다.

 

 

나도 시야가 흔들릴 만큼 술에 취했지만, 대학 동기들과 마실 때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다.

무사히 샤워를 마치고, 가글을 한 후, 과연 머리가 마를 때까지 기다릴 만큼 괜찮지도 않았으니까, 적당히 물기만 털고 셔츠를 갈아입고, 그리고.

 

그리고.

 

술에 취해 있던 나는, 왠지 여러가지 일들이 귀찮아,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미도리마의 몸을 힘껏 눌러 벽 쪽으로 밀어내고, 그 옆에 기어들었다.

그저, 굉장히, 굉장히 졸렸던 것이다. 순식간에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깨어난 것은 5시경이었다.

 

 

싸구려 커튼 너머가 어슴푸레하게 밝아왔다.

낡은 에어컨이 움직이는 소리가 조용하게 울리고 있었다. 오른팔만이 유난히 추웠다.

부드럽고 마음이 안정되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눈을 뜬 채로 있었다.

나와 신쨩은 꼭 달라붙어, 거의 얼싸안은 듯한 모습으로 자고 있었다.

 

 

굉장히 졸렸고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는지, 머리가 멍해서 좀처럼 무슨 상황인지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만 오른팔만이 꽤 추워, 배 근처에 말려있던 얇은 이불을 끌어 올려 덮었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신쨩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신쨩은 잘 자고 있었다. 입술이 얇게 열려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몇 번 쯤, 아니, 몇 번이나 신쨩으로 빼고 있었다.

어느 쪽인가 하면, 평범하게 여자가 나오는 AV나 잡지로 할 때가 많았지만, 참지 못하고 무심코 신쨩으로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때, 나는, 그 신쨩과 꼭 달라붙어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도, 발기는 하지 않았다.

 

알코올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우정이 성욕에, 이 순간 우연히 이긴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발기하지 않았다.

 

그저 공연히 슬퍼졌다. 그래서 신쨩의 몸 위에 올리고 있던 오른팔에 조금 힘을 주었다. 그리고 신쨩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부드럽고 마음이 안정되는 듯한 냄새가 났다.

그것은 샴푸나 바디소프 같은 상쾌하며 청결하고 플로럴한 향기와는 달랐다. 땀이나 알코올이나 그 외 여러 가지 체취 같은 것이 서로 섞인, 잡다한 냄새였다.

그런데도 그 냄새는 나를 굉장히 안심시켰다. 안심시키면서, 동시에 굉장히 슬프게 만들었다.

 

 

신쨩은 잘 자고 있었다.

조용히, 신쨩의 가슴이 호흡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등에 올린 팔로 신쨩의 등을 어루만졌다. 구겨진 셔츠가 만져졌다.

신쨩은 잘 자고 있었다.

 

 

"신쨩."

 

 

신쨩이 눈을 뜨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불렀다.

방은 어슴푸레 밝았다. 에어컨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먼 곳에서 가끔, 차 엔진소리가 들렸다.

 

신쨩의 몸은 크고 따뜻했다.

 

눈물이 멋대로 흘러나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신쨩의 합격 발표날을 떠올렸다.

그 때는 대학에 들어가면 분명 많은 것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 마음만이 변함없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신쨩이 누군가와 결혼해, 아이가 생겨, 나와는 이제 거의 만날 일이 없어져도, 이 마음만이 남을지를.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지를. 만약 그렇게 되었을 때, 나는 신쨩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다시 선택할 수가 있을지를.

 

그렇지 않으면 평생 홀로 살아갈까? 그런 것도 생각했다.

어렸다. 이 사랑을 위해서 일생 혼자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할 만큼은 어렸다.

 

 

"신쨩, 좋아해."

 

 

작은 소리로, 속삭임 정도의 크기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취기가 다시 올라온 것처럼 가슴이 시끄럽게 뛰었다.

낮에는 말할 수 없다. 맨정신으로도 말할 수 없다. 아주 조금 남은 알코올의 힘을 빌렸다.

 

"좋아해…미안…"

 

신쨩에게는 말할 수 없다. 말하면 많은 것을 잃는다.

 

"미안…"

 

신쨩이 깨어있는 동안엔 말할 수 없는 것을, 신쨩이 자고 있는 사이에 제멋대로, 혼자서 속삭였다.

 

 

 

 

그런 새벽을 떠올리며, 이 밤, 나는, 확실히 신쨩으로 뺐다.

당시 발기하지 않았던 나는, 지금은 그 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윤켈 없이 확실하게 발기한다. 아름다운 추억은 아름다운 채로는 남지 않는다. 그런데도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의 최상급의 반찬으로서 중요한 추억이다.

 

 

미안, 신쨩, 그리고 스무살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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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당신과 만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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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쨩과 만날 수 없어도, 신쨩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누군가와 자지 못해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간다.

 

 

신쨩이 좋아하는 상대가 어떤 여자인지 상상하면서 더블 데이트의 가능성을 따져보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빗치나 전파였을 경우의 대처법을 시뮬레이션 하기도 하고, 신쨩이 바람대로 그 여자와 교제하고 결혼해 아이가 생겨 그 아이를 내가 안아올리며 축하한다고 말하는 부분까지 상상하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한가로이 주말을 보낸 후, 월요일날 출근해보니 내 금요일 밤의 추태는 왜인지 이미 몇명이 알고 있었다.

 

 

"타카오군."

"왜."

"타카오군. 요, 타카오. 한때의 헤픈 남자여."

"뭐야."

"너 다시 봤어. 너에게도 절조나 성의나 미련 같은 인간적이고 귀여운 면이 있었구나."

"뭐?"

"차려진 밥상, 거절했다며?"

"아-…"

 

 

출근한 후 책상에 앉자마자 이 모양이다.

오는 길에 산 캔커피를 열고, 말없이 마신다.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스러운 아우라를 온몸으로 내뿜는다. 하지만 소용없다.

동료는 어젯밤 제대로 자지 않았는지, 붉어진 눈으로 히죽히죽 웃으며 옆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어디서 뭘 한 걸까.

뭐 주말 밤에, 다 큰 어른이 어디서 뭘 하든 그건 자기 마음이지만.

 

 

"너 한동안 정말 심했었지…오는 사람 막지 않고 떠나는 사람 붙잡지 않기로."

"그런 일이 있었나?"

"겨우 진정됐구나. 좋아 좋아. 그대로 사축인 채 정신적으로 거세되어 버려."

"사랑의 전도사 같은 나에게 잘도 말하네. 뭐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지금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여자와 사귄 적 있는 것 같잖아. 네가 소프 다니는 거 사무직 신입들한테 퍼뜨려 줄게."

"기다려. 타카오군 기다려."

"주말동안 아주 열심히 놀았나 봐? 눈 빨갛다고 너, 징그럽게. 어젯밤은 즐거웠어?"

"질투하지 마. 뭐야, 차였던 게 이제서야 반응이 와? 재결합이라도 하고 싶어?"

"그런 거 아니야. 일이나 해, 일. 아침부터 졸린 얼굴이나 하고선."

 

 

근처에 있던 논문으로 이마를 찰싹 때렸다. 이 상태라면 오늘 낮 즈음에는 플로어 전체에 퍼질 것이다.

뭐 좋다. 마침 딱 좋다. 당분간 나는 진심으로 성실한 타카오군을 목표로 삼아주겠다. 가벼운 연애가 아닌, 진실된 사랑을 찾아 주겠어.

신쨩이 아닌 상대와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진실된 사랑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주말동안, 나는 차분히 신쨩에게 좋아하는 상대가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했다.

 

나는 신쨩의 사랑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런 쩨쩨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각오했다. 나는 신쨩이 행복하길 바라고, 그건 정말로 옛날부터 쭉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각오했다.

신쨩을 무사히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게 하고, 결혼해 아이를 가지게 하고, 그 아이에게 내 이름에서 따온 ‘카즈'를 붙이게 하는 것이 현재 내 일생의 야망이다. 남자아이라면 카즈타로. 여자아이라면 카즈코. 둘 다 일본인다운 좋은 이름이다. 촌스러워도 좋다. 신쨩의 아이라면 조금 촌스러운 편이 딱 좋다. 그걸로 좋다. 이제 그걸로 좋다.

포기한다거나, 그런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부터 바라지 않았던 것을, 지금 다시 한번, 일생 바라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은 것 뿐이다.

 

 

그래. 방해는 하지 않는다. 나는 평생 신쨩의 사랑을 가로막지 않을 것이다.

대신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고른다. 그것이 인사를 다한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신쨩이 마침내 내게 그 사람을 소개했을 때, 제대로 웃을 수 있도록, 울지 않도록, 축복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후 내가 혼자 외롭지 않게, 최대한 진실된 사랑과 비슷한 것을 찾는다.

마음의 틈새를 메우는 진실된 사랑. 모구로 후쿠조 같은 게 있다면 살 수 있겠지만,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있는 힘껏 착실하게 스스로 찾자. 가능한 범위에서.

 

 

"그런 관계로, 미팅 잘 부탁해."

"하아? 뭐야, 차인 쇼크로 발기부전 온 거 아니었어?"

"거의 발기부전이야. 그러니까 이런 나라도 일으켜 줄만한 좋은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는 거야."

"징그러워. 너 말하는 게 아주 징그러워."

"시끄러. 주말동안 노느라 월요일에 꾸벅꾸벅 조는 놈이 이해하는 것마냥 말하지 말라고. 내가 금요일 밤에 어떤 기분으로 집에 돌아갔는지 상상해 볼래?"

"완전 웃겨."

"그렇지. 나도 집에 가서 혼자 폭소했어. 그리고 울었어."

"불쌍한 타카오군. 이번에 레바티오 받아다 줄게."

"레바티오?"

"비아그라."

"필, 요, 없어! 자력으로 어떻게든 할 거야! 그치만 받을 수 있으면 줘!"

"그래그래."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게 월요일.

 

 

 

 

그리고 다음날, 그 동료가 일을 쉬었다.

 

 

"어라, 사토, 오늘 휴일이야?"

"아, 타카오. 큰일이야."

"뭐야."

"아데노 나왔어."

"하?"

"사토. 결막염이래."

"하아?"

"유행성 각결막염."

"…진짜?"

"진짜로. 큰일이야."

"큰일이네. 나 괜찮으려나."

"그렇게 치면 모두들 그래. 거의 모두 접촉했어."

"그러고 보면 눈 새빨갰지 그 녀석…"

 

 

유행성 각결막염은 아데노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증으로, 전염력이 무서울만큼 강하다. 그러니까 발병하면 무조건 격리시킬 수 밖에 없다.

학교도 회사도 쉬고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 아무리 급한 일을 떠맡고 있어도, 중요한 접대가 있어도, 유급휴가가 남지 않았어도, 문답무용 휴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위에 전염되어, 더욱 피해가 커진다.

 

 

"사토, 오늘 정보 제공 있었나?"

"몰라. 근데 모레는 접대 있었지."

"우와…대타 누가 되려나."

"몰라. 타카오가 가."

"싫어."

 

 

이렇게 말했던 것이, 화요일 아침.

 

 

 

"타카오, 너 내일 저녁에 시간 비어 있냐?"

"네?"

"내일 밤. 불타는 금요일 밤. 비어 있지? 알겠다. 그럼 너 접대 갔다 와라."

"잠깐, 잠깐만요, 잠깐만요. 내일은 말이죠..."

"여자랑 약속 있으면 사과하고 예정 미뤄놔라."

"아뇨아뇨, 그게 아니라..."

"그럼 됐네. 뭐야,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위독하신가?"

"건강하신데요."

"그러면 접대..."

"잠깐, 잠시만요, 아, 그거 혹시 사토가 하기로 했던?"

"혹시가 아니라 사토야."

 

 

과장은 그렇게 말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일부러 곤란하다는 어필을 하고 있다.

이제 안 속는다. 지금까지 이 사람의 이것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그 녀석이 쉬어준 덕분에 나는 여기저기에 고개 숙이고 야근하고, 집에서 나올 때 애들한테 또 놀러오란 말이나 듣는 생활을 보내고 있어. 불쌍하지? 도와주고 싶지?"

  

뭐가. 잔업이 취미인 주제에 잘도 말한다.

애초에 아이가 또 놀러오라고 말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요 며칠 근무 상황의 문제가 아니다. 평소의 행실이 매우 나쁜 탓이다.

 

"그야 뭐 저라도 힘이 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어요."

"말 잘했다. 그러면 접대..."

"그치만요! 과장님, 저 평소에 강압약만 판매하는 놈이에요?"

"좋잖아. 일본의 건강 수명을 늘리고 있는 게 틀림없어."

"반면 아데노에 걸린 사토 군은 항암제만 판매하고 있는 놈입니다."

"쓸모가 없는 놈이다. 일본 의료보험의 적이야."

"분야가 너무 다르단 거에요. 저 항암제 쪽은 몰라요."

"괜찮아 괜찮아. 같이 술 마시고 밥 먹고 선생님들한테 아부 좀 떨어주고 마지막에 회사 앞으로 영수증 끊어서 돈 내주고 오면 그걸로 끝. 정보 제공은 안 해도 돼."

"단순한 접대입니까?"

"그게 아니면 너한테 부탁 안 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움츠린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다.

특별히 접대가 싫어서가 아니다. 금요일 밤이 무너지는 것을 싫어할 만큼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쳐도, 왜, 나야.

 

 

"좀, 저 말고도 적임자가 있잖아요."

"없으니까 말하는 거야. 너 아사히 병원의 미도리마 선생님하고 아는 사이지?"

"하..."

"미도리마 선생님. 미도리마 신타로 선생님."

"네?"

 

미도리마는, 그 미도리마인가. 그렇겠지. 그 밖에 그런 이름은 들은 적 없다.

 

"같은 동아리였다며? 마침 잘됐네. 동창회라도 하고 와라."

"아니, 잠시만요. 접대라니, 미도리마 선생님을?"

"그래. 거기 제1 내과 부장이 미도리마 선생님을 데리고 한 잔 하러 가고 싶다고 해서, 우리가 그 스폰서야. 미도리마 선생님, 꽤 까다로운 성격이라고 하니까, 네가 적당히 분위기 띄우고 와. 뭐 그런 관계로 네가 적임이야. 정보 제공은 없는 걸로, 나한테 미움받기 싫으면 고분고분하게 갔다 와라. 이상, 질문은?"

"질문이랄까, 제안입니다."

"말해 봐라."

"저, 바로 얼마 전에, 그 미도리마 선생님하고 만나서 조금 싸움 비슷한 걸 했는데요. 분명 거북한 술이 될 거에요."

"그러면 취하게 만들어서 무릎 꿇고 술김에 용서받아라. 잘 됐네. 일하는 김에 화해도 할 수 있고. 갔다와라."

"…네."

 

확정된 사항에 이것저것 반박해봐야 시간 낭비다.

그리고 이 이상은 역시 나에 대한 인상이 나빠진다. 나중 일은 알게 뭐냐. 우선 사축으로서는 가라고 한 이상 갈 수밖에 없다.

 

 

"착한 아이구나 타카오. 여기, 가게야. 택시 티켓은 총무에게 받아."

"알겠습니다. 우와, 좋은 가게."

"가서 실컷 먹고 마시고 와. 바로 퇴근으로 돼."

"신난다―…"

 

밤 10시에 술 마시고 밥 먹고, 회사에 돌아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 짓 하는 건, 이 과장 정도밖에 없다.

 

 

 

 

 

그런 연유로 꽤나 높은 문턱을 자랑하는 요정의 사진과 지도가 들어간 광고지를 받은 게 목요일 저녁.

잔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지금 한밤중.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신쨩에게 메일을 보내야 할지 고민한다.

 

 

일단 한 마디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담당 지역이 달라, 나는 지금까지 신쨩의 병원에 출입한 적은 없었다. 물론 접대 자리에서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의사와 MR이라고 하면 언젠가 이런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조금 기대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인가.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아무 연락도 없이 내가 접대 자리에 나타나면, 분명 신쨩은 놀랄 것이고, 그 이상으로 어떤 얼굴을 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표정을 할 것이다

 

 

"역시 좀 거북하겠지―…"

 

 

휴대폰 속, 신쨩의 연락처를 바라보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싸움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닌지도 모른다. 메일을 보내면 전처럼 답장도 돌아 온다. 하지만 어색함은 있다. 신쨩의 새빨갛게 된 얼굴이나, 마지막에 말한 돌아간다, 라고 반복했던 완고한 목소리라거나.

그와 동시에, 이런 기회라도 좋아, 만나고 싶어, 목소리를 듣고 싶어. 그런 것도 생각한다.

 

 

"어떻게 하지…"

 

 

현실적으로, 내가 간다고 말하면, 자칫 잘못하면 신쨩은 접대 자리 자체를 거절할 수도 있다.

신쨩에게는 그런 부분이 있다. 이상한 결벽함이라고 할까, 인간 관계에 대한 경솔함이라고 할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과 이 부장과의 식사를 거절할 수도 있다.

 

나와 신쨩의 프라이베이트를 생각하면 연락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일을 중요시한다면, 연락했을 때 오히려 문제가 복잡해진다.

그리고 나 자신의 단순한 욕망을 말하자면, 예상치 못한 사태라 해도 신쨩과 만날 수 있는 것은 기쁘다. 그게 설령 어딘가의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신쨩일지라도.

 

"좋아."

 

2 대 1. 다수결이야말로 이 세상 최대의 진리다. 연락은 하지 않는다.

그때 가서 신쨩이 조금 싫은 얼굴을 해도 그건 그거.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반복한 사소한 언쟁의 산에 파묻힐 것이다. 최악의 경우, 과장의 말대로 취하게 만들어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일하는 김에 화해. 훌륭하지 않은가.

 

들고있던 휴대폰을 침대에 내던졌다.

만나고 싶다.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게 역시 최우선이다.

뭣하면 애인 자랑이라도 사랑 고민이라도 들어 줄게. 분명 웃으며 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 이젠…됐어…"

 

 

사랑 고민이라도 들어 줄게.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멀고 먼 꿈나라 동화같은 사랑 고민이라도. 그게 신쨩의 목소리로 말하는 거라면, 행복한 기분으로 들어 줄 수 있어.

나는 그렇게 타협한다.

그러니까 제발 잊어줘. 신쨩에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적 있는지, 내가 그런 심한 말을 한 걸 잊어 줘. 단순한 소망이었어. 신쨩은 누구도 좋아하지 못해, 라는 나의 소망.

잊어 줘. 나를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말아 줘. 적어도 제발, 제일 가까운 파트너로 있게 해 줘.

 

 

"미안…"

 

 

만나고 싶지 않겠지. 지금은 나와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해. 만나러 갈게.

많은 기대는 하지 않으니까 적어도 눈 앞에서, 한 번 만나 함께 밥을 먹을 기회 정도는 역시 잡고 싶어. 앞으로 얼마나, 그런 기회가 남아 있을지조차 알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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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보답받지 못해도 이어질 수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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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일곱 시.

 

 

가게에 도착해 우선 여주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금까지 이용한 적 없는 가게였기 때문에 명함을 주고, 대신에 메뉴판을 받는다. 사전에 사토에게 받은 인계 메일에 의하면 부장 선생님에게 싫어하는 음식이나 알레르기는 없음. 만약을 위해 대충 내용을 확인한다.

무난한 에피타이저. 전채요리는 전복. 구이 요리는 은어. 디저트는 유자 샤벳. 여기는 팥이 들어간 게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뭐 괜찮을거라 생각한다.

 

고개를 들고, 영업답게 꾸벅 몸을 숙였다.

 

"그럼, 오늘 밤은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이쪽이야말로. 사토 씨에게는 늘 신세를 지고 있어요."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주인은 붙임성좋게 인사를 돌려주며, 건네준 명함을 품에 넣고 안쪽으로 사라진다. 그렇지만 사토 녀석, 이런 비싼 가게를 단골로 하고 있는 건가.

역시 암 담당. 좋은 걸 먹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터석이 있고, 그 안쪽으로 나무 복도와 객실이 이어진다.

흔한 요정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호젓한 안뜰이 보이고, 얼룩조릿대가 우거진 연못 가장자리에는 시시오도시도 있다. 장지문이 열린 객실에 저녁의 바람이 흘러들고 있다.

푸른 다다미 위에 준비된 좌석 위치와 사케 리스트를 확인한 후, 손목시계를 본다.

모임은 일곱시 반에 시작될 예정이다.

 

 

종업원이 가져온 차를 한 잔 마시고, 넥타이를 고쳐맨 후 가게 앞에 선다. 금요일 밤이라 비슷한 접대가 몇 건 있는지, 도로 끝에 수트를 입은 이들이 하나 둘 서있다.

얼굴은 모르지만 어차피 동업자일 것이다. 리먼 쇼크 이후에도 윤택한 접대 자금이 넘쳐나는 업종은 그리 많지 않다. 접대 자숙 풍조가 울다 질릴 광경이다.

드문드문 빛나는 오렌지색 담배 불빛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밤하늘로 사라져간다. 서서 피는 담배도 과연 매너 좋게, 모두 휴대 재떨이를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 흥미 삼아 아주 잠깐동안 담배를 피웠었다.

신쨩이 싫어했기 때문에 바로 그만두었다. 재떨이를 살 틈도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다행이었다. 의사 선생님들은 골초도 있는 반면, 옷에서 담배 냄새가 풍기는 것만으로도 싫은 얼굴을 하는 사람도 있다. 신쨩도 그중 한 사람일 것이다.

 

 

멍하니 대나무 울타리에 등을 맡기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좁은 골목으로 승용차가 들어온다. 학창 시절부터 여전한 시력으로 뒷좌석에 앉아있는 큰 몸을 확인하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가게 입구 앞에서 승용차가 멈춘다. 자동으로 열리는 문 옆에 선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에노 제약, 타카오입니다!"

 

우렁차게 인사하며 택시 안을 들여다본다. 택시 안에서는 차가워진 공기가 흘러나왔다.

조수석 뒤에 앉은 신쨩이, 안경 속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신쨩은 투박한 린넨 생지의 흰 셔츠와 모스 그린 컬러의 면 팬츠, 그렌슨의 무광 갈색 구두를 신고 있다. 전부 내가 골라서 사게 한 것이다.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머리가 짧아졌다. 분명 그 후 잘랐을 것이다. 앞머리가 말끔해져 눈매가 시원하다. 변함없이 멋진 남자다.

신쨩의 큰 몸 탓에 택시 뒷자석이 몹시 좁아 보인다.

 

나는 영업사원의 영역을 넘지 않을 정도로, 빙긋 미소지었다.

 

"자, 이쪽으로."

"어째서..."

"미도리마 군? 무슨 일인가?"

"아, 아뇨..."

 

신쨩은 차 안을 돌아보고 어색하게 고개를 흔든 후, 다시 한번 나를 올려다보며 뭔가 말하고 싶은 듯 눈을 깜빡이며 택시에서 내렸다.

뒤이어 60세 전후 즈음의 풍채 좋은 아저씨가 내린다. 인계 자료에 있었던 제1 내과 아라이 부장 선생님이다.

 

"음? 오늘 사토 군이 아니었나?"

"아, 죄송합니다! 사토가 결막염으로 출근 정지를 당해서요! 대타로 저, 타카오가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래. 타카오군. 잘 부탁하네. 처음 만나는 거였나?"

"네, 저는 평소에 다른 지역을 담당하고 있어서요. 하지만 여기서 만나뵙게 된 것도 뭔가의 인연이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재빨리 명함을 내밀자, 선생님은 한 손으로 받아 양복 안에 넣었다.

 

"아, 미도리마 선생님도, "

"필요 없어."

"미도리마 군?"

"아아, 죄송합니다. 말씀드리는 게 늦었지만 저 미도리마 선생님과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아~, 그래? 미도리마 군?"

"...그렇습니다."

"이거 부끄럽습니다. 미도리마 선생님에 비하면 못난 동창입니다! 자 어서, 안으로."

"흐음. 아, 사토 군은 괜찮은가?"

"네 물론입니다! 바보인 건 죽어도 낫질 않습니다만, 그것과 결막염 외에는 아주 건강합니다."

 

풍채 좋은 부장 선생님을 입구 쪽으로 모시자, 기다리고 있던 여주인이 어머나 선생님 오랜만이네요, 라고 인사를 건네며 안부를 묻기 시작해, 나는 뒤를 돌았다.

신쨩이 뾰로통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다.

 

"자, 미도리마 선생님도 어서 들어오세요."

"뭘 하고 있는 것이야."

"일이야. 미안, 놀랐어?"

"당연한 것이야. 왜 미리 연락하지 않았지."

"미안, 깜빡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신쨩은 나를 힐끗 노려봤다.

역시 이런 거짓말은 들키는 게 당연하다. 나는 신쨩과 관련된 일은 깜빡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웃으며 얼버무린다. 담배를 문 영업사원이 조금 흥미로운 듯이 이쪽을 보고 있다. 이 자식, 신쨩의 앞에서는 담배 꺼라.

 

 

"머리 잘랐네, 신쨩"

"...앞머리가 거추장스러웠다는 것이야."

"잘 어울려. 옷도."

"그런 건 여자에게나 말해."

"말할 상대가 없어...저기 신쨩, 저번엔 미안."

"...지금 말하지 마."

"그렇지. 다음에 말할게. 자, 어서 들어가시죠, 부장 선생님이 기다리십니다."

 

등을 가볍게 밀며 재촉하자, 신쨩은 다시 한 번 뭔가 말하고 싶은 듯 나를 한번 노려봤지만, 말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퇴근길의 신쨩에게서는, 아주 조금, 여러 약품이 뒤섞인 듯한 독특한 냄새가 난다.

 

 

 

 

 

부장 선생님은 여주인에게 안내받아 먼저 방에 들어가, 상석에 앉아 있다.

그 정면에 신쨩이 앉고, 나는 입구 쪽의 신쨩 옆자리에 앉았다. 가늘게 열린 장지문 너머에는 밤의 정원이 펼쳐져, 등롱 속에서 주홍색 불꽃이 흔들리고 있다. 좌식 테이블에 놓인 옻칠한 화병에는 도라지꽃이 꽂혀 있다.

나는 일단 헛기침을 한번 했다.

 

 

"아, 오늘은 저희 회사를 지명해 주셔서..."

"아니, 그런 딱딱한 건 됐네. 나야말로 우리끼리의 회식에 와 줘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저희로서는 이런 자리가 아니면 선생님들과 막역한 이야기는 못 하니까요...선생님, 술은 맥주로 괜찮으십니까?"

"아 그래, 그럼 우선 맥주. 그리고 사케 있나?"

"물론 있습니다! 리스트 가져오겠습니다. 미도리마 선생님은 맥주 말고 다른게 좋으실까요? 이쪽이 소프트 드링크 메뉴인데요."

"이봐 이봐, 미도리마 군. 처음부터 소프트 드링크는 아니잖아."

"그렇네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이쪽이 칵테일입니다. 조엽수림은 어떠세요? 같은 초록색이니까요. 식전 술 정도로."

"...그럼 그걸로 부탁한다는 것이다."

"네, 그러면 지금 주문하고 오겠습니다. 사케 리스트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방긋 웃고 꾸벅 인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방 쪽으로 향하며, 도중에 종업원에게 말을 건다.

 

 

"술 주문이요. 생맥주 글라스 두 개. 조엽수림 하나. 조엽수림은 최대한 리큐어 적게 해서."

"괜찮나요?"

"괜찮습니다. 술 약한 사람이라. 그리고 사케 리스트도 부탁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좋아, 이걸로 좋다.

신쨩이 마실 칵테일 도수는 철저하게 낮춘다.

 

 

 

 

 

 

객실로 돌아오자 잠시 후 술과 전채요리가 옮겨져 왔다 .

부드러운 거품이 잘 올라간 맥주를 받아 부장 선생님에게 건네고, 원통형 글라스에 든 초록색 칵테일을 신쨩에게 건네준다.

 

 

"그럼, 건배."

"건배! 잘 먹겠습니다!"

"오, 타카오 군, 자네 마시는 폼이 좋은데."

"아아~, 저 맥주를 제일 좋아해서요."

"그거 맘에 드네. 우리 병원 젊은 애들은 거의 술을 안 마셔."

"아, 역시 건강 때문인가요?"

"글쎄. 우리가 젊었을 때는 마실 수 있을 만큼 마셨는데 말일세."

 

신쨩은 아랑곳하지 않고 알코올이 거의 없는 칵테일을 홀짝이며 마시고 있다.

 

"오늘은 두 분만 오신 건가요?"

"아, 오늘은 미도리마 군의 진로 지도니까."

"아하."

"우리 병원 에이스니까. 장차 크게 될 수 있을 코스를 지금부터 생각해 두고 싶은데, 미도리마 군이 좀처럼 내켜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개인 면접을 하고 있지."

"이야, 굉장하네요. 에이스님은 어딜 가도 에이스님인 걸까요?"

"타카오."

"무슨 말인가, 그건?"

 

 

신쨩이 이쪽을 힐끗 쏘아본다.

그런가. 신쨩이 농구를 하던 것은 고등학교까지다. 현재의 직장 사람들에게 신쨩은 그저 실력 좋은 의사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 굉장한 충격이었던, 그 농구부의 에이스, 기적의 세대의 신쨩을 이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이상한 느낌이다. 격세지감이다.

 

 

"그게 실은, 저 옛날에 미도리마 선생님과 같은 고등학교에 같은 동아리였습니다."

"흠. 미도리마 군, 동아리 활동도 했었나?"

"농구를 조금."

"조금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에이스! 우리들의 에이스님이었어요!"

"흐음."

 

부장 선생님은 흥미로운 듯 턱을 괴고 눈썹을 움직였다.

 

"굉장히 강해서 제 우상이었네요. 정말 엄청나게 멋졌거든요."

"그거 대단하네."

"과장입니다."

"과장이라니 당치도 않아요.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하는데 선배들과는 싸우고, 같은 학년이라 처음엔 이거 힘든 녀석과 팀메이트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순식간에 반해 버리고 말았네요. 나중엔 그저 동경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야 굉장히 강했으니까요."

"뭐야, 지금과 마찬가지구나."

"...선생님."

 

신쨩은 안절부절 못하며 그만두기를 바라는 듯 끼어들었지만, 부장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적당히 얼버무리며 싱글거리고 있다.

 

"아, 미도리마 선생님, 지금도 그런 느낌입니까?"

"그렇지. 노력하는 천재야. 그만큼 노력하는 의사는 좀처럼 없어. 그러니까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는데 말이네."

"저는 임상의로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습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한 번 기초를 포함해서 최첨단의 연구를 확실히 경험해 두면, 분명 임상에도 도움이 될걸세."

  

 

하아, 그런 느낌인가, 과연 진로 지도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이 돌봐주고 있는 것이다. 제멋대로 3회까지 현역이면 어떻게 하지.

 

여전히 뭘 하든 우수하고 노력의 천재인 신쨩은, 그 연구소가 좋아, 의료 센터가, 암 연구소가, 아니면 유학이, 라고 말하는 부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살짝 눈을 내리깔고 하지만 저는 임상을, 같은 말을 하며 거절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건 확실히 내가 항암제 얘기를 할 틈도 없는, 내부의 회식이다.

딱히 끼어들지도 못한 채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가끔 추가 주문을 하고, 사케 리스트를 받아 부장 선생님의 오더를 넣고, 음식을 집어먹고 있자, 부장 선생님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야, 자네가 우리 병원에서 임상을 하는 것은 기쁘지만."

"송구합니다."

"우리 딸도 미도리마 선생님을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시끄럽고."

"따, 따님이요?!"

"...선생님, 그 이야기는."

 

 

잠자코 듣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반응해 버렸다.

왜 거기서 따님이? 신쨩은 무심코 반응한 나를 쏘아본 후 뭔가 눈짓을 하듯 부장 선생님 쪽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무리야 신쨩. 부장 선생님은 이미 사케에 꽤 취해 있어. 얼굴 새빨갛다고.

 

 

"아라이 선생님...저기, 따님은, 선생님의 따님입니까?"

"타카오!"

"그래그래, 우리 딸이 미도리마 군의 팬이라...아니 우리 병원에서 약사를 하고 있는데, 아주 팬이라, 내가 미도리마 군을 내보내는 얘기를 하면 울며 싫어하는 거야...그럼 차라리 네가 여자의 매력으로 붙잡아 보라고 했더니 그건 또 화를 내고..."

"아, 네에."

"선생님, 그 이야기는..."

"아아, 아니아니, 실례했군. 농담일세. 아니, 자네가 정말로 그럴 기분이 들어 준다면, 나도 기쁘겠지만…"

"선생님, 제발..."

 

 

나도 지금까지 꽤나 맥주를 마셨었다. 마셨었는데, 단번에 술이 깼다.

무슨 소리야. 뭐야 그거. 신쨩,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간 거야. 나 칵테일에 알코올 빼달라고 말해 뒀었는데. 저기. 기다려. 기다려 줘, 왜 그렇게, 바닥만 보고 있는거야?

기다려. 아니, 괜찮아. 이게 아니다. 뭘 위한 주말의 시뮬레이션? 괜찮아. 견딜 수 있어.

 

 

"그, 렇습니까―! 이야, 역시 미도리마 선생님! 부럽습니다!"

"타카오."

"아, 선생님, 따님의 안목은 확실해요. 미도리마 선생님, 쌀쌀맞아 보이지만 상냥한 점도 있고, 성실하고…아뇨, 쓸데없는 참견이네요! 저도 참 주책이네요!"

"아니, 나도 과음했네. 이상한 소릴 했군, 또 딸에게 혼나겠어...잠깐 화장실 좀, 실례하겠네."

"아, 나가셔서 오른쪽에 있습니다!"

"그래그래."

 

 

부장 선생님은 약간 휘청거리는 발길로, 장지문을 활짝 열고 복도 저 편으로 사라졌다.

지금? 지금 이 타이밍에 화장실입니까, 선생님.

 

좌식 테이블 위에는 아까까지 먹던 은어가 너덜너덜해진 채 접시 위에 남아 있다.

어쩐지 식욕마저 사라졌다. 힐끗 돌아보자, 신쨩이, 붉어진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그것을 생각하니 조금 오싹했다.

 

 

"...미도리마 선생님."

"그 호칭은 그만둬."

"신쨩."

"뭐지."

"아니...으음, 그."

"뭐냐는 것이다."

"신쨩, 부장 선생님의 따님과 사귀고 있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너가 꽤 마음에 든 것 같던데?"

"한번 같이 식사를 했을 뿐인 것이야."

"그 사람이야?"

"뭐가."

"신쨩이 좋아하는 사람."

 

 

물수건이 얼굴로 날아왔다.

피할 수 있었지만, 그대로 안면으로 받았다. 신쨩은 붉어진 얼굴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아아, 신쨩. 이 타이밍에서 그런 얼굴 하지 말아 줘. 내 각오 같은 건, 시뮬레이션 같은 건, 그렇게 견고한 게 아니야.

하지만, 아아, 힘내라 타카오.

여기가 남자의 고비. 지금까지 몇 번이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상상했다. 신쨩을, 누군가 올바른 상대를 향해, 떠나보내는 날.

 

 

"신쨩, 얼굴 빨개졌어."

"시끄럽다.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란 것이야."

"왜? 가르쳐 줘. 나 이런 건 꽤 도움이 되는 편이야.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필요하다면 큐피드라도 해 줄게. 나 신쨩이...신쨩이 정말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행복해진다면, 기쁘기도 하고..."

"시끄럽다. 쓸데없는 억측을 하지 마. 불쾌하다!"

"왜?"

"너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은, 화가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흥미 본위로 그렇게 캐묻지 마."

 

 

신쨩. 흥미 본위 같은 게 아니다.

 

신쨩이 생각하는 그런 것과는 달라.

가벼운 마음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농담 따위가 아니라, 설교를 늘어놓거나, 놀리거나, 경험자인 양 조언을 하려는,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진심으로, 단지, 신쨩의 행복을 빌고 싶어서.

협력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 뿐이라도, 태도 뿐이라도, 사랑에 협력하는 절친의 형태를 흉내내지 않으면, 뭔가, 지금까지 굉장히 소중하게 지켜왔던 것들이, 단숨에 무너질 것 같아서.

 

"신쨩..."

"시끄럽다. 이제 입 다물어. 그 얼굴도 어떻게 좀 해."

 

그 말을 듣고, 뺨이 확 뜨거워졌다.

나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무심코 얼굴을 숙였지만, 그래도 아직 안 돼서, 일어나 문을 열자 마침 돌아온 부장 선생님과 마주쳤다.

 

"아, 죄송합니다, 저도 잠시 화장실에..."

"아, 그래 그래, 괜찮나?"

"네 물론입니다!"

 

어떻게든 영업 스마일을 만들고, 객실을 나와 화장실에 뛰어들어갔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정돈하고, 넥타이도 다시 맨 후 객실로 돌아오자 더 이상 부장 선생님의 따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최근 암 치료에 대한 이야기나, 대학의 인사와 같은 이야기 등이 줄줄이 흘러갔고,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맞장구를 쳤지만 거의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끔 신쨩 쪽을 봤다가, 시선을 피했다.

 

 

부장 선생님이 신쨩에게 사케를 권하는 것을 보면서, 아아, 감싸줘야 하는데, 속여줘야 하는데, 저런 걸 마시게 하면 안 될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그저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신쨩을 조금 난처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선생님이 주는 대로 다이긴죠를 몇 잔 비웠다. 차라리 홧술이라도 들이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계가 열 시를 향해갈 무렵에, 폐회하기로 했다.

 

나는 택시를 불러, 먼저 부장 선생님을 태웠다. 부장 선생님은 기분좋게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다음으로, 비틀거리는 신쨩을 밀어넣었다.

 

 

"미도리마 선생님, 집까지 잘 돌아갈 수 있어?"

"...괜찮다는 것이야."

"기사님, 주소 여기요. 잘 부탁드립니다."

 

가게의 이름이 들어간 코스터 뒤에 암기하고 있던 신쨩의 맨션 주소를 써 넣은 후, 운전 기사에게 건넸다. 기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 가자마자 바로 샤워하고 양치하고 자."

"쓸데없는 참견인 것이야..."

 

신쨩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흐느적대며 택시 뒷좌석에서 몸을 웅크렸다.

함께 타고 집까지 데려다주고 싶은 마음을 꾹 삼킨다. 오늘의 나는 어디까지나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이다.

 

"그럼,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갈 테니까."

"타카오."

"왜, 신쨩?"

"너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신쨩은,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파묻은 채 그렇게 말했다. 나는 무심코, 조금 웃어 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소중한 나의 에이스님이야."

 

그리고는 부드러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러니까, 언젠가, 조금 더 진정되면, 신쨩이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려줘. 진지하게 들어줄 테니까. 진지하게 협력할 테니까. 절대로 방해 따윈 하지 않을게.

 

"푹 쉬어, 신쨩."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기사에게 부탁한 후 택시 문이 닫히는 것을 지켜본다.

 

 

크게 한 번 기지개를 켰다. 보통 수단으로는 안 된다. 이만큼 계속 질질 끌어온 마음을 단념하는 게 그렇게 쉬울 리 없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심란한 마음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좋다. 오늘은 잘 안 풀렸다. 그것뿐이다.

또 다음번. 그래도 안 된다면, 다시 그 다음 기회에. 그렇게, 점점 익숙해져 가자. 분명 언젠가는 신쨩도, 나에게 전부 가르쳐 줄 것이다.

그 사람의 어디가 좋아서,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나는 그것을 전부 듣는다. 오기로라도 전부 알아내고야 말겠다.

흥미 본위 따위가 아니다.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심정으로, 전부 듣는 것이다.

 

 "그럼, 돌아갈까..."

 

아주 조금,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사실은 느긋한 학생 시절이 아니라, 이런 기분일 때, 토해내고 싶은 마음을 삼키듯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뱉고 싶은 마음 대신에 연기를 내뿜는 것이, 담배를 피우는 올바는 방법일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아파트까지 돌아왔다.

그리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 없다.

신쨩이 큰 몸을 웅크린 채, 우리 집 문 앞에서 자고 있었다.

 

우선, 그 택시 기사 용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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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포인트 오브 노 리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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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몸이 문 앞을 막고 있어, 문을 열 수 없다.

주저앉아 얼굴을 살펴보려 했지만, 무릎에 파묻혀 앞머리 틈새로 이마밖에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여름도 이제 끝자락이지만 그 나름대로 찌는 듯이 덥다. 잘도 이런 곳에서. 주정뱅이는 무섭다.

유아등이 부웅 소리를 낸다.

 

 

"…신쨔~앙."

 

 

머리를 부스스 헝클어트리며 말을 걸어 본다. 으으, 나 음, 하는 신음 소리 같은 것이 되돌아온다.

 

 

"잘못했다간 신고당해, 신쨩."

 

 

주소도 확실히 전해 줬는데, 뭘 어떻게 잘못하면 이런 다이나믹한 오배송이 되는 걸까. 뭐 어렴풋이 상상은 가지만. 어차피 신쨩이 억지를 부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무슨 변덕일까. 내가 회사에 들렀다 가기라도 했으면 이 녀석은 그동안 계속 여기에서 자고 있을 작정이었던 걸까.

있을법해서 더 무섭다.

 

 

신쨩의, 무릎에 파묻힌 머리 양 끝, 귀 옆에 손을 대고 하나 둘 위를 향하게 했다. 귀 뒤쪽, 머리카락 언저리가 희미하게 땀에 젖어 있다.

신쨩은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음, 타카오인가…"

"타카오인가, 가 아냐 신쨩. 뭐 하는 거야, 이런 데서. 집에 갈 수 있다고 했지?"

"마음을 바꾼 것이야."

"이 주정뱅이."

"주정뱅이라 나쁜가."

"나빠. 연락도 없이 이런 곳에서 잠들고. 감기 걸리면 어쩔거야. 마음이 바뀌었으면 제대로 전화를 해야지. 그럼 좀 더 빨리 왔는데."

"타카오."

"뭐야?"

"자고 갈거야."

"자고 가. 이렇게 헤롱헤롱해서 더 이상 어딜 가려고? 간다고 해도 안 보내. 아~정말, 역시 택시 같이 타고 갈 걸 그랬어. 자, 신쨩 문 열테니까 좀 비켜봐. 움직일 수 있어?"

 

 

계속 붙잡고 있었던 신쨩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무릎 앞에 끼운 양손을 잡는다. 일어서서 가볍게 잡아당기자, 신쨩은 일단 자력으로 휘청휘청 일어섰다.

내가 바보였다. 이런 신쨩이 혼자서 제대로 집에 돌아가기를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자, 난간 잡아. 가만히 있어야 해."

"응,"

 

 

거의 환자를 돌보는 것과 다름없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따고, 활짝 열어젖혔다.

 

 

"자, 들어와, 들어가면 거기 앉아. 천천히."

"어둡다."

"지금 불 켜 줄게."

 

신쨩은 비틀거리며 좁은 현관에 앉았다. 문을 닫고, 신발을 벗은 후 신쨩의 옆을 지나쳐 현관의 불을 켜고 신쨩의 뒤에 털썩 앉았다.

 

"자, 구두 벗자―."

"…혼자서 할 수 있어."

"그런 건 술 깨고 말하세요."

 

한쪽 발씩 들고 가죽 구두를 벗겼다.

신쨩은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말한 것 치고는, 멍하니 내가 구두를 벗기는 것을 보고 있다.

신쨩의 큰 구두를 현관 구석에 가지런히 모아둔다.

 

"자, 그럼 다음, 침대로 가자. 일어설 수 있어?"

"샤워도 안 하고, 이도 안 닦았다. 네가 하라고 했다는 것이야…"

"내일 해도 돼. 내일 가기 전에 샤워하고 양치하자. 오늘은 그만 자세요."

 

 

신쨩은 천천히 일어선다. 청소하지 않은 방에는 벗어던져둔 옷 따위가 군데군데 떨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시트도 빨지 않았다. 욕실도 청소하지 않았다. 오늘 신쨩이 집에 자러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으니까.

 

 

"아래 조심해."

"…어질러져 있구나. 드물다."

"드물지 않아. 원래 이래, 평소 우리 집."

 

 

신쨩이 올 것 같은 날엔, 항상 전날에 정리했어. 시트도 빨았어. 욕실도 청소했어. 신쨩은 모르겠지만.

몰라도 괜찮지만.

 

거실 소파를 지나, 옆 방 침대까지 손을 잡고 데려간다. 이제 재우기만 하면 되니, 침실의 불은 켜지 않는다. 거실에서 흘러드는 빛으로 발밑은 확실히 보인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셔츠를 적당히 걷어차서 치워버린다.

신쨩이 우리 집에 묵는 것은 꽤 오랜만이다. 놀러 와도 자고 갈 때는 많지 않았다. 마지막이 전 여자친구와의 동거가 시작되기 전이니까, 꽤 오랜만이다.

 

 

"자 신쨩, 자도 돼. 옷 갈아입고 싶어? 준비할까? 아니면 이제 졸려?"

"타카오."

"응?"

 

 

침대 앞에서 등을 톡톡 두드리며 재촉하자, 신쨩은 침대에 올라가지 않고 비틀거리며 그 앞에 앉았다.

침대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나를 올려다본다. 그대로 잠들면 안돼. 신쨩을 침대까지 옮기는 건 꽤 힘드니까.

나는 우선 자켓만 벗어 가까운 옷걸이에 걸고, 주저앉아 신쨩과 정면에서 눈을 맞춘다.

 

 

"물이나 뭐 좀 마실래?"

"필요 없어."

"그럼, 단팥죽은?"

"필요 없어. …타카오."

"왜에?"

"꽃은 어떻게 했지?"

"꽃?"

"화분에 있던…"

"아아…"

 

 

나는 슬쩍 베란다 쪽을 쳐다봤다. 에어컨 실외기 옆의, 완전히 말라버린 마리골드. 왜 지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시들어 버려서, 베란다에 내버려 뒀는데....그게 왜? 뭐야 신쨩, 그 꽃 좋아했어?"

"아니."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주정뱅이는 알 수 없다.

신쨩은 가장자리가 붉어진 눈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이제 영문 모를 꽃 얘기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졌다. 넥타이의 매듭에 손가락을 넣어 살짝 느슨하게 한 후, 얼버무리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 신쨩, 그런 눈으로 날 바라보면 이상한 생각을 할 것 같아. 부탁이니까 오늘은 이만 잠들어 줘. 오늘 같은 날에, 더 이상은, 솔직히 조금 힘들다.

나는 가능한 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듯한 얼굴로 미소지었다. 신쨩은 가만히 나를 보고 있다.

쭈그려 앉아있던 다리가 조금 저리기 시작했다.

 

 

"싫었던 것이다."

 

 

 신쨩이, 툭 말한다. 나를 가만히 응시한 채로.

 

 

"응?"

"그, 꽃이다."

"응, 아, 아아, 그래."

 

그럼, 빨리 버리자. 어차피 시들어 버렸으니.

 

"그런데 왜? 신쨩 꽃 싫어했었나? 아, 혹시 꽃가루 알레르기야?"

"그게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신쨩은 갑자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옆 방에서 흘러드는 불빛이 신쨩의 목덜미를 비춘다. 어두운 침실에서, 정말, 신쨩이 빨리 잠들지 않으면 곤란한데도, 나는 무심코 그 목덜미를 가만히 바라보고 말았다.

 

이성이, 나의 자랑인 강철의 자제심이, 약간 흐릿해진다.

 

시트는 빨지 않았다.

에마르의 향기도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의 땀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

이 주정뱅이. 왜 하필이면 오늘 우리 집에 오는 거야? 왜 자고 가게 해달라고 하는 거야?

폐는 아니다. 하지만 괴롭다. 순수한 친구가 될 수 없는 나에게는, 괴롭다.

 

신쨩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침대에도 올라가지 않는다.

 

"신쨩?"

"얼마 전 네 집에 왔을 때, 그 꽃이 없어져 있어서 안심했던 것이다."

"에..."

 

 

그렇게 싫었던 거야? 그런 기색도 없었는데. 신쨩은 생각한 것을 참지 않고 꽤 거침없이 말하는 편이다. 특히 나에 대해서는. 그랬을 것이다. 그랬어?

지금도?

왜인지, 시야가 흔들렸다.

나는 눈앞에 있는 신쨩의, 내 시선을 피한 눈동자를 바라본다. 가슴이 답답해진 기분이 들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려고 하자, 이미 헐렁헐렁 느슨해져 있었다.

 

 

"말해 줬으면, 좀 더 빨리 버렸을 텐데."

"…그런 게 아니다."

"신쨩?"

"…나는, 가끔, 내가 싫어진다는 것이다."

"신쨩?"

"타카오."

 

신쨩이 팔을 뻗어, 정면에 주저앉아 있는 내 손을 만진다.

나는 무심코, 움찔했다. 술에 취한 신쨩의 손은, 뜨거웠다.

 

"네 방에, 내가 모르는 것이 늘어나는 게 싫었다..."

"에,"

"그런건 속 좁은 짓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도, 싫었다는 것이다…"

 

 

그 꽃은.

 

전 여자친구가 사온 것이었다. 식물이 있는 편이 마음이 안정된다고 해서. 나는 별로 뭐든 상관없었다. 확실히 꽃이 있는 것도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 애가 이 집에서 지내는 동안은 둘이서 적당히 물을 주었다. 그렇지만 헤어지고, 그 아이가 나가, 화분만 남겨지고, 그 후는 신경도 쓰지 않았더니, 깨닫고 보니 시들어서.

 

고작 그 정도인 것이었다.

 

지금은 에어컨 실외기 옆에서, 먼지에 파묻혀있다.

나는 빨래를 널 때 정도밖엔 떠올릴 일도 없다. 버리는 것조차 그만 잊어버리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신쨩... 취한 거야?"

"취했다면, 나쁜가?"

"나빠...신쨩, 그렇지만,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그럼, 마치..."

 

 

마치.

계속 말하려다, 숨을 죽였다. 열었던 입을 닫는다.

아니, 그렇지 않다.

그걸, 말해선 안 된다.

 

 

"이제 자자. 신쨩, 아침에 깨워 줄 테니까."

"타카오."

"왜에?"

 

 

목소리는, 평소처럼 낼 수 있었다. 얼굴도 평소처럼 웃을 수 있었다. 나는, 이런 것에 익숙하다.

신쨩이, 피했던 눈동자를 천천히 나에게 되돌린다. 주정뱅이의 눈이다. 가장자리가 붉고 조금 촉촉해진, 이런 술취한 눈을 한 친구에게서 특별한 말을 끌어내려고 하다니, 안 된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응?"

"너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것은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던 신쨩이, 택시 안에서 나에게 물었던 말이었다.

 

"아까도 말했잖아. 예나 지금이나, 소중하고 소중한 내 에이스님이야."

"타카오."

"뭐야?"

"너는,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

 

 

창 밖에서, 차의 경적이 울렸다.

술 취한 학생인가 뭔가가 소리 지르는 목소리가 먼 곳에서 울린다.

또 시야가, 조금 흔들렸다.

 

 

 

"뭐?"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난 알 수가 없다. 나를 내버려 두고, 여러 여자들과 사귀는 주제에 또 금방 헤어지고. 변덕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전전하면서, 나를 계속 돌봐주고. 그러니까, 나는..."

"신쨩, 기다려, 잠깐 기다려,"

"너는, 내 친구인가? 친구일 생각인가? 너는 어째서,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단정 짓는 거냐..!"

 

 

신쨩의 긴 속눈썹이 떨렸다고 생각한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내 손 아래 겹쳐진 신쨩의 손가락을, 꽉 움켜쥐고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타카오. 저번에 네가 나에게 물었었지. 사람을 좋아하게 된 적이 있냐고."

"신쨩, 그건..."

"4개월이라고? 웃기지 마!"

 

 

신쨩은, 내 손 위에 겹쳐진 것과는 반대쪽 손을 올려, 속눈썹에 고인 눈물을 아무렇게나 닦았다. 그리고, 분명하게,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관통한다.

그런 식으로 보지 말아줘. 그렇게 쳐다보면.

 

 

"이제 곧 10년이다."

 

목 안쪽에서 숨이 떨렸다.

 

"10년, 나는, 너를..."

 

나는 무심코, 생각보다 먼저, 빈 손을 들어 신쨩의 입을 꽉 눌렀다.

그렇게 말을 가로막았다. 신쨩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나도 아마, 눈을 크게 뜨고 있을 것이다.

안구가 아플 정도로,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신쨩을 보고 있다.

 

 

"어째서…"

 

신쨩이.

 

"그렇지만, 그런, 나는 계속..."

 

숨기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눈치챌 리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신쨩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도, 신쨩 자신의, 나에 대한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도.

 

환기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옆방에서 흘러드는 불빛이, 얇은 눈물막으로 덮인 신쨩의 눈동자를 빛내고 있다. 손에 땀이 맺혔다. 그 땀이 밴 손바닥에 신쨩의 숨이 닿는다.

 

한동안 두 사람 모두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신쨩이 손을 올려 내가 입을 막고 있는 팔을 잡았다. 별 저항도 못 한 채, 내 팔은 스르륵 떨어졌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네가 한 말이다."

"내가."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네가, 그렇게, 울면서,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는 걸, 나는 몰랐다. 네가 그런 말을 사람인줄은, 몰랐던 것이다. 놀랐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무렵.

나와 신쨩은, 이 침대에서, 둘이 함께 잤다. 단 한 번, 함께 잤다.

그날의 일을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신쨩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발기하지 않고, 오직 신쨩에게 매달려 울었다.

나는 줄곧, 정말 계속, 10년 가까이, 신쨩은 그때 자고 있었다고, 그렇게 믿었었다.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한 의미를 생각했다. 네가 여자와 사귀라고 해서, 말을 걸어오는 상대와 사귀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와 만나든, 너와는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곧 헤어졌다. 누구도 그런 식으로 나를 좋아한다고는 말해 주지 않았다...아니 다르군. 누가, 어떤 식으로, 좋아한다고 말해도, 너에게 들었을 때와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고 신쨩은 고개를 숙였다. 나는 고갤 숙일 수조차 없었다. 그저 신쨩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네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무슨 생각으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무슨 생각으로 지금도 나를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 모르지만, 나는 그때부터, 될 수 있는 한, 너와 함께 있겠다고 결심했다."

 

 

내 침대의, 빨지 않은 시트 위에 신쨩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신쨩이 기댄 그 곳은, 거의 십 년 전에, 나와 신쨩이, 단 한 번, 같이 잤을 때와 같은 침대다.

 

멀리서 아직 술 취한 학생이 떠들고 있다. 그 목소리가, 머나먼 날의 우리들의 목소리와 겹친다.

그 무렵, 나는 젊었고, 지금보다 훨씬 더 인내심이 없었지만, 그런데도, 많은 일을 참았다. 참고 참아, 단 한 사람, 정말로 정말로 좋아하는 상대와 같은 침대에서 자도 발기하지 않은 채, 그저 매달려 울었다.

 

"너의 좋아한다는 말과, 내 마음은 다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하지만 사실은, 그것마저, 참아야 했었던 것이라고, 지금에 와서야 알았다.

 

"나는 계속, 널 좋아했다. 지금도 그래…네가, 그러니까 네가 나에게, 누구를 좋아하는지, 사람을 좋아하게 된 적이 있냐고, 그런 걸 물어보는 건, 정말로 화가 나서…"

 

 

그렇게 말하고, 또 신쨩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울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때처럼 젊지 않고, 그때처럼 많이 취하지도 않았다.

나는 팔을 들어, 신쨩이 몸을 기댄 침대 양 옆으로, 감싸안듯 양손을 짚었다. 고개를 숙인 신쨩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신쨩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신쨩.

신쨩.

미도리마.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정말로 소중한 에이스님.

 

밤의 소리가, 먼 곳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차의 엔진음이나 주정뱅이의 웃음소리. 그런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젊은 무렵의, 나나 신쨩의 목소리와 비슷한 소리들이, 멀어져 간다.

그저 지금의, 어쩔 수 없이, 현재의 어른이 되어 버린 나와 신쨩의 알코올이 스며든 숨결만이, 방 안에 남아 있다.

 

 

시트에서는 에마르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익숙해진 나 자신의 체취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침대에 신쨩이 몸을 기대고, 내가 그것을 감싸안듯 팔을 뻗고 있다.

신쨩은 가만히 나를 올려보고 있다.

그 눈이, 마치 고교생의 그 무렵과 같이 맑아, 나는 무심코 작게 웃었다.

 

 

나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계속, 계속, 이젠 울고 싶어질 만큼 오랫동안, 좋아한 사람이 있어.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분명 신쨩이 깨달아 버릴 테니까. 정말로, 일생, 숨길 생각이었다. 신쨩. 나, 노력했어. 열심히 노력했어.

 

신쨩이 말로 하진 않아도 나를 굉장히 소중하게 여겨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신쨩은 반드시 행복해지길 원했다. 그것은 나의 연심이나 사랑보다도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 신쨩이, 이 세상의 누구보다 철저하게 행복해지길 원했다. 내가 신쨩을 얼마나 좋아한들, 신쨩의 아이조차 낳아줄 수 없다.

신쨩은 내가 원하면 나와 함께 있어 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신쨩을, 이런 사랑에 말려들게 해선 안 된다. 비록 신쨩이, 마음의 그저 한구석에서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해도, 내가 깨닫게 하지 않는다면, 신쨩은 분명 평생 그런 건 눈치채지 못한 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걸, 알고 있던 것이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만이, 내 안에서 이 사랑을 끝내고, 신쨩은 깨닫지 못한 채, 신쨩과 나의 허무한 사랑을, 허무한 짝사랑인 채로 끝내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련이 남아, 지금까지 계속, 신쨩 곁에 있었다.

아무래도, 떨어져 버리는 것만은 싫어서.

어떻게든, 곁에 있고 싶어서. 곁에서, 적어도 지켜보고 싶어서. 행복해지는 모습을, 배웅하고 싶어서.

 

 

미안해. 신쨩.

 

 

내 와이셔츠는 땀으로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환풍기가 달각달각 울고 있었다. 가늘게 열린 커텐 틈새에서 가끔 밖을 달리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흘러들어왔다 빠져나갔다. 술주정꾼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미안. 신쨩, 미안해. 좋아한다고 말해 버려서, 미안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팔이 떨렸다. 뭘 참고 있는지도 이제 알 수 없는 채로, 그저 참는다.

주먹을 움켜쥐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타카오."

"신쨩."

 

 

술주정꾼이 밖에서 사라지자, 방 안은 그저 고요함만이 남아, 신쨩의 숨소리가 잘 들려왔다. 나 자신의 심장 소리도 시끄러울 만큼 잘 들렸다.

알코올 때문이 아니다. 훨씬 성가신 것 때문에, 몸 안이 뜨겁고,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그런데도 손끝만이 오싹할 정도로 차가워진다.

 

 

"신쨩."

"타카오."

 

나는 가능한 한 냉정하게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십년 이상 해왔던 일인데, 지금은 뺨에 매우 경련이 일어난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타카오."

 

신쨩이, 고등학생 무렵과 똑같은 솔직한 목소리와 눈동자를 나에게 던져와, 나는 어떻게든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경련이 일어나는 뺨을 억지로 움직여, 일그러진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제 바보같은 고등학생이 아니야. 애가 아니라고. 알고 있잖아."

"타카오."

"이제 와서, 그런 소릴 해도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아. 끝날 뿐이야. 나와 신쨩의 직업이나 생활이."

 

 

이제 아이가 아니다. 일하고 있다. 나는 제약회사에서. 신쨩은 병원에서.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의료 종사자 사이에서 남자 동성애자라는 부류의 인간이 어떤 식으로 보여지고 있는지. 그것은 하나의 부호이다. 정절의 결여. 고정되지 않는 섹스파트너. STD 만연에 대한 무관심. HIV감염 고위험군.

 

 

"타카오. 너는 진심으로 그런 건가."

"그래. 그래 신쨩. 그래 미도리마. 난 이제 바보 같은 고등학생이 아냐.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 나는 이제 바보 같은 고등학생이 아니야. 그러니까 너도,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하지 마."

"타카오."

"뭐야."

"너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건가?"

 

 

신쨩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듣기 흉하게 떨리고 있는 내 목소리가 바보 같았다. 나는 눈을 세 번 깜박여, 눈물이 흐르지 않는 것만 확인하고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그래."

"그런가."

 

신쨩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살며시 팔을 들어, 내 몸을 자신에게서 떼어 놓듯이 밀었다.

 

 

"미안하다. 이상한 소리를 했다는 것이야."

"괜찮아. 취해서 하는 소리, 잖아."

"…그렇군."

 

신쨩은 작게 웃었다. 나는 팔을 침대에서 떼고 신쨩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신쨩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팔꿈치를 올린 뒤 왼손으로 미간을 덮었다.

 

"타카오."

"응."

"오늘은 자고 간다. 이제 막차가 없는 것이야."

"자고 가. 이렇게 헤롱헤롱해서, 더 이상 어디 가려고."

"고맙다."

 

나는 넥타이를 풀어 내던졌다. 와이셔츠가 땀으로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손에 땀도 심하다. 머리를 쓸어 올리자, 신쨩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있었다.

 

"있지. 신쨩. 이런 이야기 한 뒤지만 말야."

"뭐야?"

"…신쨩과, 친구로 있고 싶어. 그것뿐이야. 믿어 주면 정말 기쁠 거야."

"…그런가."

"응."

"알았다."

"고마워."

 

신쨩은, 침대를 잡고 일어섰다. 아직 조금 취기가 남아 있는지 다리가 비틀거리고 있다.

 

"소파를, 빌린다."

"침대에서 자도 괜찮아."

"아니, 소파를 빌린다."

"그래. 내일 몇 시에 일어나고 싶어?"

"그렇네…내일은 일도 없으니까, 9시로 좋은 것이야."

"알았어. 잘 자, 신쨩."

"잘 자, 타카오."

 

 

그렇게 말한 후 신쨩은 소파에 긴 다리가 삐져나오게 누워 있다가, 조금 뒤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첫차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시간에 시간에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자는 척하며, 그것을 떠나보냈다.

 

 

과연, 이럴 때 뭐라고 배웅의 말을 건네면 좋을지, 나조차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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